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앞에서 무릎 꿇고 참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것을 두고 관련 당사자들의 반발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국가유공자·보훈대상자 등으로 구성된 민간단체인 ‘국가유공자를 사랑하는 모임’(국사모)은 23일 오전 성명서를 내고 “현충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윤 원내대표의 행태에 보훈가족들은 커다란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였다”며 “윤 원내대표는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새로 구성된 원내지도부와 함께 현충원을 참배하는 자리에서 현충탑 앞에 1분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뒤 방명록에 “선열들이시여! 국민들이시여! 피해자님이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민심을 받들어 민생을 살피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해당 방명록에 대해 한준호 원내대변인은 “이번 보궐선거의 발생 이유가 됐던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들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참배를 마친 뒤 작성한 방명록. 오종택 기자
윤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충원에서 피해자를 언급한 것에 대해 “우리 당이 그분들에 대해 충분히 마음으로 사과를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신원이 밝혀질 수 있어 찾아가거나 뵙자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았다”며 “(현충원이) 사과의 말씀을 드릴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사모는 성명에서 “(현충원에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것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에 대한 영예를 훼손하고,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한 국가유공자와 전몰·순직군경 유족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당사자에게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방명록에 ‘피해자님이여’라고 적은 것에 대해서도 “현충원에 잠들어있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의미할 수 있도록 한 행위”라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를 전쟁피해자, 군 피해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모독”이라고도 꼬집었다.
앞서 22일에는 오 전 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낸 긴급 보도자료에서 “저는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이 아니다”라며 “도대체 왜 현충원에서 사과를 하냐. 윤 위원장이 현충원에서 사과를 한 것은 너무나 모욕적”이라는 입장을 냈다. 박 전 시장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도 23일 페이스북에 “사과는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고 그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잘못에 대한 언급이 없는 사과는 공허한 수사가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당내에서도 윤 원내대표의 사과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 참패 후 ‘쇄신’을 외치고 있는 민주당 초선모임(더민초)은 22일 발표한 쇄신안에서 “당 지도부에 국민과 피해자가 받아드릴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 초선 의원은 “더민초 차원에서 윤 원내대표의 사과에 대한 논의는 아직 없었다”면서도 “현충원 참배와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분명 분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초선 의원도 “누가 봐도 뜬금없는 사과였다”며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방명록을 적다가 빚어진 실수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