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CRPS환우회 회장
입력 : 2022.04.08 20:27 수정 : 2022.04.08 20:27
희귀난치질환자가 차기 정부에 바라는 제언
희귀난치질환은 그 특성상, 다수의 국민과 환자들에 초점을 맞춘 보건의료체계에서 담아 내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가 희귀난치질환자의 어려움에 공감을 표해 왔고, 실제로 희귀난치질환자들을 위한 정책과 배려가 확대돼 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희귀난치질환자들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불편과 아쉬움이 적지 않다.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우선적으로 각 질환의 특성과 환자들의 상황에 맞는 치료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환경의 개선이다. 하지만 의사결정의 대부분이 개별 질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각계 전문가와 관계자들에 의해 이뤄지는 현실은, 희귀난치질환자들의 입장에선 커다란 아쉬움이다. 문제 해결의 시작점은 ‘소통’과 상호 ‘경청’이라 생각한다. 희귀난치질환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질병의 경우, 질환자 등 당사자는 물론 해당 분야를 실제 다룬 경험이 많은 전문의들의 직접적인 의견 개진 기회가 많아야 한다. 특히 약제 및 치료 관련 정책과 가이드라인 개발 등 제도 개선을 진행할 때가 그렇다.
암질환심의위원회의 경우를 예로 들면, 일단 전문위원 숫자가 부족하다. 이 위원회에서 가령 약제를 심의한다면, 적어도 해당 약제를 잘 알고 판단할 수 있는 전문의 비중이 충분히 높아야 한다. 또한 의사 개진 과정에서 질환의 당사자인 환우회 관계자의 참관인 자격 배석도 필요할 것이다.
장애제도도 아쉬운 사례로 들고 싶다. 최근 들어 정부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기면증, 투렛증후군 등을 새로 장애요인으로 인정했다. 이 전향적인 선택은 많은 환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줬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가시적인 증상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장애판정을 못 받고 있거나, 다발성증후군 등 질환에 있어 복합장애 인정이 안 되는 등 보완을 원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의료용 마약진통제 오남용에 대한 문제 역시 관련 질환과 약제를 잘 이해하는 전문의 목소리로부터 해결이 시작되어야 한다. 약제 남용과 통제기전 부재 등 부정적인 요소들만 나열되고 부각되는 사이, 정작 이 치료제를 꼭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눈총과 편견에 시달리고 제때 약제를 구하지 못하는 문제가 우려된다.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에 이들 약제의 정보를 통합시켜 제대로 된 관리를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희귀난치질환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필요로 하는 치료혜택을 얻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환자들이 구하기 쉽지 않은 것은 물론, 국내 도입 자체가 안 된 경우도 허다하다. 부신백질디스트로피(ALD)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로렌조오일의 경우 아직 정부로부터 지원과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만성 신경통증 환자들 중 일부는 기존 치료법으로 조절되지 않는데, 이 경우 지코노타이드 같은 약물을 척수강 내 직접 주입하는 치료법에 희망을 걸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10여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이 약품은 국내에 도입돼 있지 않다.
이러한 약제들을 통해 신속하고 원활하게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제도적 여건 역시 중요하다. 현재 시행 중인 의료비 상한제도 보완을 통해 환자들이 경제적으로 좌절하는 상황을 최소화했으면 한다. 또한 기존 허가돼 사용되는 약물 중에서도 환자 특성에 맞는 선별 처방이 보다 용이하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신약에 대한 우선적인 접근 보장 또한 실현되길 바란다.
비슷한 맥락에서 경제성평가제도도 그렇다. 항암 신약의 보험급여는 위험분담제를 통해 진행되고 있어서, 경제성평가제도는 면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급여 검토 지연이 더 많은 환자들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성평가제도는 신약을 평가하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암환자를 비롯한 많은 중증환자들은 다른 수단들을 적극 검토하여 도입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기고는 ‘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부신백질이영양증부모모임, 한국기면병환우협회, 국가유공자를 사랑하는 모임’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