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건물 외벽에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기 위한 '이웃에 영웅이 산다' 캠페인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연합뉴스
내년부터 75세 이상 참전유공자들이 보훈병원이 아닌 민간 위탁병원에서도 약값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022년 국가보훈 예산안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내년 4분기부터 75세 이상 참전유공자들이 전국 435개소 위탁병원을 이용할 때도 약값을 지원할 예정이다.
그간 참전유공자들이 약값을 지원받기 위해선 서울과 인천,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전국 6곳뿐인 보훈병원에 가야 했다. 참전유공자법 시행령에도 ‘위탁병원의 경우 약제비용은 제외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 때문에 전쟁 후유증으로 인한 질환과 고령화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참전유공자들이 보훈병원까지 이동하기엔 불편함이 따른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특히 보훈병원이 없는 강원이나 경남 등 도서산간지역에 사는 노병(老兵)들은 매달 받는 참전 명예수당 34만원을 약값으로 써야만 했다.
정부 역시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다. 201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전국 참전유공자들이 위탁병원을 이용할 때 진료비뿐 아닌 약제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2년가량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예산 부족’이 그 이유였다. 2019년 권익위의 권고가 있었을 땐 이미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되어 있었고, 2020년 예산안엔 반영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했으나 최종 예산안에서 빠졌다는 것이 보훈처 측 설명이다.
본지도 지난 6월 14일 <”예산 없다”며 6·25 용사들 약값 지원 못 한다는 정부> 기사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보훈 단체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연간 70억~110억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충남 예산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계기 예산지역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국가보훈처
올해 국가보훈 예산은 작년보다 180억원 증가한 5조8350억원이 편성됐다. 참전유공자 위탁병원 약값 지원 외에도 전국 위탁병원 수를 내년 말까지 640개소로 늘리고, 국가유공자 및 유가족에 지급하는 보상금을 5%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80세 이상 참전유공자 중 중위소득 50% 이하인 경우 매달 10만원의 생계지원금도 내년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지난 7월말 기준 전국의 참전유공자 수는 25만8616명으로, 매년 약 2만명의 참전유공자가 세상을 떠나고 있다. 참전유공자 약값 문제는 내년부터 해결될 전망이지만, 유공자 단체는 전체 예산 증가액이 고령화에 따른 보훈대상자 수의 자연 감소를 고려하면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한다. 보훈단체 ‘국가유공자를 사랑하는 모임’ 측은 “보훈 예산안은 전년대비 18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며 “일자리 예산 31조, 청년지원금 23조5000억 등 다른 예산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34만원으로 동결된 참전 명예수당 등을 들며 “반영되지 못한 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예산안은 오는 3일 국회에 제출된다. 국회는 본회의 의결 등을 거쳐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