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서 다리 잃었는데 ‘지원 불가’…외면당한 의수·족 예산
입력 : 2022-09-15 09:39
월남전 참전용사 A씨는 지뢰를 밟아 다리가 절단됐다. 국가보훈처에서 제공한 의족은 너무 무거웠다. 착용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절단 부위가 변형되고 피부가 부르트기 시작했다. 티타늄 등 첨단 소재를 활용한 가벼운 의족을 알게 된 A씨가 보훈처에 지원을 요청하자 ‘예산이 부족해 지원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잘린 다리를 안고 2년을 기다린 후에야 딱 맞는 의족을 착용하고 본격적으로 일상 회복에 나설 수 있었다.
보훈급여, 참전 명예수당 등 보훈 예산이 증가하고 있지만 A씨처럼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국가유공자들이 있다. 신체 절단 사고를 겪은 상이 군경에게 의수·족은 신체 일부지만 관련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15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내년도 보철구 예산은 62억5300만원이다. 2019년 이후 올해까지 4년간 60억300만에 멈춰 있던 예산이 처음으로 2억5000만원 늘었다. 지난 5년 전체 보훈 예산 증가율(11.9%)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증가율(4.1%)이다.
산술적으로 지난해 예산을 지급된 보철구 수(6261개)로 나눠보면 보철구 1개당 95만8313원이 지원됐다. 의족·의수 등 보철구의 가격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절단된 신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기본 보철구는 수십만 원이면 구매 가능하다. 그러나 설거지를 하거나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는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의 보철구는 최소 수 백만 원이다.
보훈처는 로봇 의수, 로봇 의족 등 첨단 보철구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월까지 로봇 의족을 받은 사람은 5명뿐이다. 지난해 의족을 지원받은 418명의 유공자 중 극히 소수만이 일상 회복에 도움을 받은 것이다.
부족한 정부 지원에 국가유공자는 기업 사회공헌 사업에 기대고 있다. 포스코는 매년 10억원을 들여 청·장년층 국가유공자에 로봇 의수·족 등 첨단 보철구를 지원 중이다. 지난해에는 모두 31명에게 보철구를 제공했는데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인당 지원금은 3100만원이다. 포스코가 제공 중인 첨단 의족은 1억원대 가격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처가 수치로 드러나는 성과를 위해 이같은 지원 방식을 고집한다는 비판도 있다. 예산이 정해져 있으니 첨단 보철구를 소수에게 지원하기보다는 기본 보철구를 다수에게 지원해 지원 인원을 늘린다는 것이다. 의족을 착용 중인 한 유공자는 “상이군경의 일상 회복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보철구 지급 숫자에 집중할 게 아니라 고품질 의수·족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 추가 확보를 위해 구체적인 수요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유공자를 사랑하는 모임의 노용환 대표는 “보철구 예산은 보훈 예산 중에서도 숨겨진 예산이다. 예산 확보와 정확한 수요조사를 통해 필요한 인원들에게 적시에 보철구가 지원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