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지원금도 15만원인데”…참전유공자 예우 놓고 정무위 시끌, 왜?
기자명 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승인 2025.08.07 17:10
‘보훈 사각지대’ 해소 물꼬 텄지만…‘예산 문제’ 앞에 실질적 예우 확대는 지지부진
“10만원 받으려고 78세 배우자는 2년 기다려야”…보훈부 형식적 예우 도마 위
최근 참전유공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그 배우자에게 생계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고령 참전유공자 가족들의 생계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하지만 해당 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선 보훈부를 향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훈 대상과 지급 규모를 확대하자는 국회의 입장과 예산 제약을 고려한 보훈부의 태도가 충돌하면서다. 법 개정의 의미는 작지 않지만, ‘형식적 보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선 후속 입법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참전유공자가 사망할 경우 배우자에게도 생계지원금을 승계 지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은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이면서 80세 이상인 참전유공자 본인에게만 매월 10만 원의 생계지원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유공자 사망 이후 홀로 남겨진 고령의 배우자가 경제적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 “참전유공자의 남겨진 배우자가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사각지대 없는 보훈의료체계 구축’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도 담긴 내용이다.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할 경우 1만7000여명의 참전유공자 배우자가 생계지원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연간 201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정무위 문턱을 넘은 만큼 올해 중 입법이 완료되고, 내년부터는 문제 없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법률안 내용을 심사하면서 참전유공자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 언급되면서 제기됐다. 정무위 회의록을 보면 생계지원금을 배우자에게 승계하는 데엔 정무위와 보훈부의 이견이 없었지만, 연령과 금액 등 세부 사항을 놓고 시각차가 드러나면서 위원들의 지적이 쏟아진 것이다.
정무위가 심사한 법률안들에는 배우자의 연령 제한이 없었다. 참전유공자가 사망하면 배우자의 나이에 관계없이 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보훈부는 재정 여건을 이유로 본인과 마찬가지로 80세 이상 배우자에게만 지원하자고 정무위에 건의했다. 보훈부에 따르면, 연령 제한을 80세로 뒀을 때 연간 200억원, 75세는 230억원, 제한이 없을시 250억원으로 약 50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는데, 재정당국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무위 위원들은 예산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특별한 보상’이라는 원칙에 비춰볼 때 연령 제한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은 “여명을 90세로 잡으면 80세 이상 배우자들도 10년이면 세상을 떠난다. 넉넉잡아 10년간 3조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예산이 연간 650조원인데, 나라 지켜서 일했던 사람들한테 그 정도도 못 해주느냐”고 꼬집었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예를 들어 수급권자가 80세고 부인이 78세라고 했을 때 수급권자가 사망할 경우 부인은 2년 동안은 이 법이 적용되도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10만원이라는 돈을 배우자가 80세 될 때까지 2년이든 3년이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보훈부는 6.25 참전유공자의 경우 그 배우자도 대부분 80세가 넘었다는 점에서 보훈 사각지대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월남 참전유공자도 평균 연령이 78세 정도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정무위 위원들은 한두 명이라도 지원에서 배제될 경우 상대적 박탈감이 생길 것을 감안하면 연령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보훈부도 참전유공자에 대한 지원 취약지대가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일단 연령 제한을 토대로 한 법 개정을 통해 물꼬를 트고, 향후 재정당국과 논의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쟁점은 생계지원금 액수였다. 이번 개정안은 배우자 승계에 관한 법적 근거만을 담고 있어 구체적인 금액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법안 심사 과정에서 현재 지급 중인 월 10만원이 지나치게 적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유영하 의원은 “일반 국민한테도 소비쿠폰으로 15만원을 주는데 월 10만원은 (그분들이 나라에 희생한 부분을 감안하면) 푼돈이다”라며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한테 그 영예를 기리고 그 예우를 다한다 말은 하면서도 다른 지원에 비해 굉장히 박하게 지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생계지원금 지급액은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돼 있다. 시행령은 보훈부가 제정하고 공포하지만, 금액을 인상하려면 재정당국과의 협의가 필수다. 보훈부 역시 재정 규모 등을 늘리기 위해 재정당국과 협의했지만, 현행 수준에서만 동의를 얻은 것으로 해석된다.
척박한 예우에 대한 지적이 나온 만큼 보훈부 역시 이번 개정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개정안 통과 이후 기자들과 만나 “금액이나 지급 나이 등에 대해 다 만족하지는 못하겠지만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보훈의 사각지대가 없어야 한다’고 하신 만큼 대통령의 국정 목표가 그렇다면 그걸 충실히 하는 게 보훈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참전유공자 단체들은 일단 생계지원금 승계의 길이 열린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6·25참전유공자회 등은 “법 개정안 정무위 통과를 전폭적으로 환영한다”며 “혼자 남겨질 배우자 걱정에 눈도 못 감겠다고 말하는 노병의 오랜 바람이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되고 속도감 있게 입법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