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처우 개선’ 새 보훈체계

‘국가유공자 처우 개선’ 새 보훈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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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처우 개선’ 새 보훈체계

최민수 0 2,341 2017.08.1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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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호국영웅 감사·위로연에 참석한 참전유공자들이 먼저 떠난 전우와 순국선열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독립유공자 후손 중 ‘생활苦 1만2513명’에 매달 지원금
참전유공자 수당 인상… 국립묘지 안장시설도 6만基 확충

문재인 대통령이 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 대신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어 대한민국 보훈 기틀을 새롭게 다지겠다”며 보훈강국을 선언했다.“보훈이 애국의 출발점이 되고 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력한 보훈정책 추진 의지와 독립·참전 유공자 처우 개선 지시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내주 대통령 업무보고 때 구체적인 보훈보상체계 개선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국가 보훈 정책 현안과 주요 쟁점을 살펴본다.

1 독립운동가 3代 망한다?

1948년 8월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을 한 분들을 찾아내어 최고의 예우를 했어야 했지만 이를 간과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해방정국 혼란기에 정부 수립을 둘러싼 정파 간 대립과 다툼으로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특히 정부 수립 후 독립유공자에 대한 서훈과 예우가 없었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후손들이 무관심과 홀대를 받으며 오랜 기간 음지에 머물며 방치된 결과,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자조와 한탄이 독립운동가 후손들 입에서 터져 나왔다. 뒤늦게 1962년 4월 ‘국가유공자 등 특별원호법’이 제정돼 4·19혁명 희생자 및 월남귀순자와 함께 처음으로 ‘특별원호’ 대상이 되긴 했다. 그나마 독립유공자를 위한 연금은 대일청구권자금 중 20억 원으로 조성된 애국지사 기금으로 지급됐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 독립유공자의 4대 후손까지 지원토록 하는 법안이 제출됐으나 현재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2 독립유공자 예우 확대

보훈처는 보훈보상체계 개선안을 마련,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현재 보상금을 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의 자녀와 손자녀 중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 매월 생활지원금이 지급된다. 보상금을 받지 못한 독립유공자의 자녀·손자녀 중 생활이 어려운 자녀(3564명)·손자녀(8949명)에게 소득구간별 차등기준(중위소득 50% 이하와 70% 이하)을 적용해 매월 생활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지금은 독립유공자 자녀·손자녀의 경우 선순위자 1인에 한정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3 참전유공자 예우 확대

참전유공자의 경우 보훈병원 이용 및 75세 이상 위탁병원 이용 시 제공되는 본인 부담 의료비 60% 감면액을 대폭 인상한다. 또 고령 참전유공자에 대한 참전명예수당과 무공영예수당도 인상된다. 취업지원 관련, 보훈특별고용은 본인·배우자·35세 이하인 자녀·손자녀 3인까지, 가점취업 및 직업훈련은 본인·배우자·자녀·손자녀에 한정된다. 이밖에 대부지원·주택우선공급 조항이 있다.

현재 참전유공자에게는 대통령명의 국가유공자증서가 수여되고 65세가 넘으면 참전명예수당이 주어진다. 참전유공자는 6·25전쟁과 월남(베트남)전에 참전한 분들로 전사했거나 부상을 당하지 않고 전역한 분들이다. 2005년 국가보훈기본법 제정으로 참전유공자 예우가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지자체의 보훈에 대한 책임을 규정하면서 조례 개정을 통해 참전유공자에게 별도 수당을 만들어 지급하고 있다. 또 의료지원과 국립묘지 안장, 장제 보조비 등이 추가됐다.

이후 2008년 6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6·25참전 유공자가 국가유공자에 포함됐다. 이어 월남전 참전유공자도 같은 경로를 거쳐 2011년 6월에 국가유공자에 포함됐다.

4 국립묘지 안장 어떻게

현재 전국에 대전 현충원과 4곳의 호국원, 3곳의 민주묘지(4·19, 3·15, 5·18) 등 8곳의 국립묘지를 운영 중이다.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고령화로 인한 안장수요 증가에 대비해 국립묘지 안장 시설 6만 기를 추가로 조성하기로 했다.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거주 분포 및 접근 편의성 등을 고려해 2019년까지 국립괴산호국원에 5만 기, 2020년까지 제주국립묘지에 1만 기를 신규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또 올해 안에 국립임실호국원 제2충령당(1만2240기) 준공, 2019년까지 대전현충원(6만7890기) 등 기존 국립묘지의 안장시설을 연차적으로 확충해 부족한 안장 능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또 유해 안장식의 품격 제고를 위해 대전현충원 의전단 인력을 30명에서 35명으로 증원하고 국립호국원 의전단 17명을 신규 구성할 예정이다.

순직 군인·경찰·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확대된다. 현행 군인연금법 등에 따른 순직 군인·경찰·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보상금 및 유족연금은 보상수준이 낮고 인정 범위가 제한적이지만 재직기간 차등을 폐지하고 유족가산제를 신설하는 등 유족연금과 사망보상금 지급수준을 상향하는 군인재해보상법·공무원재해보상법 등 법률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5 독립유공자 발굴 확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현재 포상은 받아도 법적 예우를 받을 수 있는 후손이 거의 없게 된 경우가 적지 않다. 보훈학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는 수백만 명에 이르고 이 중 순국자도 15만 명이 넘는다. 항일의병투쟁만 해도 국내에서는 1895년부터 1915년까지 20년간 계속됐고 만주와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한 의병들은 독립군으로 전환됐다. 의병투쟁에서 50만 명이 넘는 분들이 희생됐고 이 중 15만 명이 전사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만든 한민족독립운동자료집에 등장하는 인물만 4만여 명이다. 독립유공자 포상을 위해서는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자료로 뒷받침돼야 하고 북한 지역 거주자의 경우 신원 확인이 어려운 한계가 있다. 보훈처는 “국가기록원의 판결문 및 수형인명부, 형사사건부를 비롯해 지자체의 범죄인 명부를 뒤져 수형 관련 자료를 확보, 사후 행적 미상으로 포상이 보류된 3·1운동 계열 약 900명에 대해 사망 시기를 확인해 포상 심사하겠다”며 “3·1절 및 2019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대대적인 포상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광복절 하루 전인 지난 14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손자 로버트 안(가운데)이 다른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함께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6 여성독립운동가 재평가

이낙연 국무총리는 16일 “유관순 열사의 법률상 서훈등급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분의 상징적 의미가 차이 나 그분의 위상이 홀대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서훈등급 조정 검토를 제안했다.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현황에 따르면 김구·이승만·안창호·안중근 등 30명이 대한민국장(1등급)이고, 신채호·신돌석·이은찬 등 93명은 대통령장(2등급·93명)으로 분류돼 있으나 유 열사는 이들보다 낮은 단계인 독립장(3등급)에 포함돼 있다. 이처럼 서훈등급이 낮아 유 열사 추모식에는 대통령 조화도 보내지지 않는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이에 이 총리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200분 정도로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며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더 많이 발굴해 달라”고 주문했다.

7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남북한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에는 독립운동 공적이 확실해도 사회주의 계열에 섰던 인물들은 포상에서 제외됐다. 김규식·조소앙 선생 등 납북 인사에 대한 포상도 1989년이 돼서야 이뤄졌을 정도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부 출범을 계기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1995년 광복 50주년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유공자에 대한 대대적인 복권이 이뤄졌다. 광복 이후에도 공산당 조직 또는 반국가단체 등에 직·간접으로 관계한 자, 광복 후 북한 정권에 적극 동조한 자 등에 대한 포상은 보류하고 나머지는 복권됐다.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고 북한 체제를 위해 공헌한 인물이 아니라면 광복 후 대한민국을 반대했거나 방해가 되지 않았다면 독립운동의 공로만은 인정하자는 학계 중론을 수용한 결과다.

반면 북한은 빨치산 항일 운동 위주로 기술하고 있다. 민족주의자 등 다른 계열의 독립운동은 소위 종파주의자로 몰려 숙청된 이후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8 독립운동 명문가는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 집안으로 거론한 석주 이상룡 선생 외에 우당 이회영 선생, 왕산 허위 선생, 담양의 창평 고씨 일문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독립운동 명문가는 많다. 경북 안동 출신의 석주 선생은 1911년 집안 3대가 만주로 망명해 이회영, 김동삼 등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 군관을 양성했다.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직할의 서로군정서 총재를 맡아 무장투쟁을 벌이는 한편 초대 국무령을 역임하고 1932년 만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숙 이승화, 동생 이상동과 이봉희, 아들 이준형, 손자 이병화, 조카 이형국·이운형·이광민 등 아홉 분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해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우당 선생 집안 7형제는 나라가 망하자 재산을 처분한 뒤 60여 명에 이르는 가솔을 이끌고 1910년 12월 서간도로 이주,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했다. 우당은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만주로 가던 중 체포돼 1932년 뤼순(旅順)감옥에서 순국했고 광복 후 조국에 돌아와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이시영 선생을 제외한 나머지 5형제는 중국에서 독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병사하거나 실종됐다. 우당과 이건영, 이석영, 이철영, 이시영, 이호영 등 6형제를 비롯, 우당의 아들 이규학과 이규창, 조카들까지 열 분이 독립유공자로 정부 포상을 받았다.

9한국은 ‘보훈 박물관’

우리는 독립운동, 6·25전쟁, 월남전 참전,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의 주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를 통해 그 당사자들을 예우하는 점에서 가히 ‘세계 보훈의 박물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정부행사만 보더라도 3·1절, 3·15,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4·19, 5·18, 현충일, 6·25, 광복절, 순국선열의 날 등이 있다. 보훈 개념이 지나치게 넓다 보니 김대중 정부 들어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과 관련한 논란도 있었다. 국권을 상실했을 때 국권 회복에 기여했거나 국가체제 그 자체의 수호에 기여한 공헌과 국가체제 안에서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헌은 구별돼야 한다는 기존 국가유공자의 반발 때문이었다. 이후 우리나라 보훈은 단일법 체계에서 독립유공자, 국가수호유공자, 민주유공자 등 3개 법체계 개편으로 분산됐다.

10 보훈의 의미

보훈 정책은 함께 겪은 집단적 기억을 국가 정체성으로 해서 국민 통합으로 이끄는 상징적 기제다. 우리나라 보훈은 근현대사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독립·호국·민주로 이어진 민족운동사는 국가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훈과 관련된 수많은 수사는 ‘기억의 정치(politics of memory)’의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국가원수가 어떤 정부행사를 주재하거나 사적지나 기념 시설물 등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김종성 전 보훈처 차장은 “거기서 무슨 내용의 연설을 하며 무엇을 강조하고 또 무엇을 피하는가 하는 것 역시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며 “때와 장소에 따라 또 정권의 성격에 따라 강조점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훈에 대한 기본적 관점이 시대나 정파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보훈이 정파에 관계없는 국민 통합의 기제이기 때문이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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