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국가보훈처가 ‘2015년 국채보상운동’이라는 황당한 이벤트를 벌여 논란이 되고있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23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국채보상운동 이벤트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종교를 뛰어 넘어 한말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을 2015년에 재현”한다고 취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어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을 갚기 위해 1907년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였던 국채보상운동이 우리 시대에 펼쳐지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기부할 수 있을까요?라고 기부품 추천을 받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1904년 일제의 고문정치가 시작되면서 도입되면서 경제가 파탄에 이르자,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선생 등이 중심이 되어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운동”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가계빚은 1060조3000억원 규모다. 지난해 8월부터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한은이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가계부채는 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달 연속 은행 가계대출이 6조9000억원씩 급증했다.

현재 부채의 질 악화도 문제가 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실이 한은 자금순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3분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3.1%까지 증가했다. 3개월 사이 2%포인트가량 증가했다.

급격한 부채 증가는 빚에 의존한 한국 경제 성장의 결과다. 해외 경제가 금융위기 등으로 출렁여 수출이 불안해질 때마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 금리 인하 등으로 정부가 손쉬운 부양에 나선 탓이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면서 빚은 늘어났고, 경제 체질은 나빠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보훈처는 현실 문제는 외면한 채 국민들의 또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듯한 이벤트를 시작해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 진 빚을 갚은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적 맥락과 현재의 상황도 전혀 다르다.

국가보훈처는 2015년 국채보상운동의 기부내용을 댓글에 달아 뽑히면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 이벤트에 대해 아이 백일반지, 결혼 예물, 책을 내놓겠다며 진지한 반응을 보이는 누리꾼들도 있다.

하지만 누리꾼 상당수는 댓글을 통해 “개수작 좀 부리지마라” “이런 미친 발상을 기획하고 승인한 니네들의 통장부터 올인 기부해주세요” “나라 빚은 내가 갚아주는데 내 빚은 누가 갚아줍니까요?” “내가 내는 세금에서 국회의원 월급 반영분 똥별들 뻘짓거리하는데 소모되는 부분 4대강 삽질에 쓰인 돈, 전직대통령 품위유지비를 아낌없이 기부하겠습니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한 “하층민들의 푼돈이나 금가락지, 금비녀가 모여봐야 목돈이 될 수도 없었던 데다가 당시 국채보상운동에도 상층민, 귀족, 명문가, 부호 등의 참여는 매우 저조하였다고 한다”는 중학교 국사교과서 내용을 인용해 비판한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