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국가유공자가 되어 한(恨)을 풀었어요.

43년 만에 국가유공자가 되어 한(恨)을 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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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국가유공자가 되어 한(恨)을 풀었어요.

신현민 0 881 2010.07.0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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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국가유공자가 되어 한(恨)을 풀었어요.

 


 

 

어느 한적한 날 오후, 여느 때와 같이 민원 상담 전화와 접수된 민원을 조사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상담 센터로부터 방문 상담이 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문조사관님, 국가유공자 등록관련 상담입니다. 상담 센터로 내려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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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사분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그마한 키에 거무스름한 얼굴, 노년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수수한 양복에 중절모를 쓰신 노신사분이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기다리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노신사분은 나의 모습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벗으시며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노신사분의 얼굴 곳곳에는 왠지 모를 병색이 완연하고, 호흡도 불편하신 듯 연신 기침을 하신다.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 또한 힘겹게 느껴진다.

 

상담 센터 책상 위에는 노신사분이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이는 한 보따리의 서류 뭉치가 남루한 보자기에 쌓여있다. 노신사 분은 그 서류 보따리를 가리키며 나에게 그 서류 보따리를 펼쳐 봐 달라고 요구하신다.

 

“우와~ 무슨 서류가 이렇게 많아요.”

 

“글쎄요, 제가 지난 43년간 수많은 정부기관들과 주고받은 민원서류들입니다. 제가 그동안 국가유공자가 되기 위해 드린 노력과 시간에 비하면 적은 분량이지요.”

 

“예~ 그러시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네요.”

 

“아닙니다. 국가유공자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여기서도 안 되면 이쯤에서 그만 접으려고 합니다. 마지막이니 잘 좀 봐주세요.”

 

노신사분은 1966년 2월 포병 장교로 군 복무 중에 차량 사고를 당하여 얼굴에 큰 상처가 생기셨고, 당시 갈비뼈 4개가 골절되어 폐를 다치는 큰 부상을 입으셨다. 전역 당시에는 어느 정도 치료가 잘 되어서 전역 이후에도 일상적인 사회생활에는 큰 불편함을 못 느끼셨다는데, 나이가 드시면서 호흡하기도 어렵고, 몸의 여러 곳이 불편하여 항상 병원 신세를 져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노신사분에게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기 보다는 노신사분이 가지고 오신 서류들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노신사분이 가지고 오신 서류들은 일자별, 기관별로 민원 내용과 그 회신문서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노신사분의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을 가늠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역역이 보여주는 서류들 속에는 그동안 노신사분의 고초도 함께 베여있었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 서류들은 노신사분이 군 병원에서 치료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병상일지 등 의무기록을 찾기 위한 민원서류들이었다. 노신사분은 오랜 세월이 지나고 정부 기록물이 전산화 된 이후에서야 비로소 본인의 병상일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후 서류들은 노신사분이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하고, 그 등록 신청이 거부된 것과 관련된 서류들이었는데, 지난 세월 노신사분이 여기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드리셨는지, 얼마나 많이 마음의 상처를 받으셨을지를 유추하여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저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국가유공자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군 복무 중에 입은 부상 부위가 군 복무와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병상일지와 같은 공인된 기록이 필요하다. 병상일지에는 부상경위, 부상 부위 등이 자세히 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노신사분은 육군 기록정보관리단을 통해 본인의 병상일지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 병상일지에는 군 복무 중 차량사고로 부상을 입고 치료 받은 기록만 적혀 있을 뿐, 그 사고의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

 

국가보훈처의 보훈심사위원회는 노신사분이 당시 포병 장교의 신분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여 당시 차량 사고가 개인적인 용무로 발생한 사고인지 군 공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노신사분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했다.

 

이후, 노신사분은 그 차량 사고가 군 복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임을 증명하기 위해 당시 함께 복무한 동료들을 수소문하고, 육군 수사단, 경찰청 등 관계기관에 당시 차량사고 기록을 확인해 달라는 민원을 수차례 제기하였으나, 당시 차량사고의 기록을 확인해 주는 기관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노신사분이 가지고 오신 서류들 속에서 당시 차량사고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차량사고 났을 때 혹시 다른 분은 안 계셨나요?”

 

“몇 명 함께 타고 있었는데, 죽은 사람도 있고, 근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시 차량사고로 죽은 사람이 있다는 노신사분의 말에 주목했다. 당시 차량사고가 군 복무 중에 일어난 사고라면 당시 차량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순직 처리가 되었을 것이고, 순직자는 대부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국립묘지 안장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노신사분이 차량사고를 당했다는 1966년 2월 24일 강원도 인제 지역에서 순직한 사람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국민권익위원회 문조사관입니다. 혹시 국립묘지 안장자 중에 1966년 2월 24일 강원도 인제에서 순직하신 분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몇 분이 지났을까. 노신사분과 나는 초조하게 국립묘지 담당자의 확인 결과를 기다렸다. 노신사분은 짧은 시간의 기다림이 몹시도 길게 느껴지셨는지, 연신 큰 한 숨을 내쉬며 모자를 벗고, 땀을 닦으신다.

 

드디어 국립묘지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 있네요. 병장 어문기. 1966월 2월 24일 강원도 인제에서 순직,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나는 노신사분에게 어문기 병장을 알고 계시냐고 물어보았다. 노신사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먼 과거의 기억 속에서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아~ 맞아 어문기, 기억납니다. 우리 부대원 중에 ‘어’씨가 한 명 있었는데, 보기 드문 성씨를 가진 병사라서 기억이 나는군요. 같은 포병 부대원이었습니다. 아마 포반에 소속된 병사였던 것 같네요.”

 

나는 부랴부랴 육군본부 인사처리과, 기록정보관리단에 어문기 병장의 매화장 보고서 등 순직 기록을 확인해 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어문기 병장의 매화장 보고서 등 그의 순직 처리를 위한 기록 속 어딘가에 당시 차량사고의 기록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문을 보내고 며칠 뒤, 육군본부로부터 어문기 병장의 매화장 보고서 사본이 도착 했다. 어문기 병장의 매화장 보고서의 사망원인 란에는 ‘1966. 2. 24. 09:00경 보급품 수령 차 2.5톤 차량에 편승하여 운행 중 브레이크 고장으로 강원 인제 북면 원통리에서 차량사고 발생, 제5이동외과병원에 후송하였으나, 두개골 골절로 순직함’ 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차량사고는 보급품 수령을 위해 군 차량에 탑승하여 운행 중에 브레이크 고장으로 난 사고로서 당시 차량사고가 군 복무와 관련된 사고임이 명확하게 확인된 것이다.

 

어문기 병장은 노신사분과 같은 부대 소속으로 같은 날, 함께 차량사고를 당하였고, 사고 현장에서 노신사분이 입원 치료를 받았던 제5이동외과병원으로 함께 후송되었으나, 사고 당일 순직한 것으로 적혀 있는 것이었다.

 

우리 위원회는 노신사분의 부상 부위가 군 복무와 관련성이 있는 공상임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을 발견하였고, 그 기록을 토대로 노신사분에 대한 국가유공자 등록 심사 절차를 다시 밟을 것을 국가보훈처에 권고하였다. 국가보훈처는 우리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09년 12월 22일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노신사분의 부상 부위를 공상으로 인정하였다.

 

이후 노신사분은 공상으로 인정받은 부위에 대하여 신체검사를 받았고, 서울보훈병원에 실시된 신체검사 결과, ‘국가유공자 상이 5급’에 해당되어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셨다.

 

국가유공자는 부상 부위에 대한 공상 인정 후, 그 공상 부위에 대한 신체검사에서 일상생활에서의 장애 정도를 고려하여 7급 이하의 상이 등급을 받아야만 국가유공자로 등록될 수 있는데, 노신사분은 신체검사에서 5급 판정을 받으신 것이다. 노신사분이 그동안 건강으로 인해 얼마나 힘드셨는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이나마 노신사분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이나마 더 빨리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 좀 더 나은 여건과 환경 속에서 치료를 받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노신사분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시고 얼마 뒤, 노신사분은 다시 우리 위원회의 상담 센터를 방문하셨다.

 

노신사분은 나에게 환한 웃음을 지으신다. 얼굴의 혈색도 많이 좋아지시고 예전처럼 기침도 하지 않으신다. 국비로 병원 치료도 받으시고, 매월 백만 원 정도의 연금이 나와 생활여건도 많이 좋아지셨다고 말씀하신다.

 

고맙습니다. 진작 권익위원회를 찾아왔어야 하는데…. 왜 그동안 그렇게 고생했는지, 지난 43년 동안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恨)이 풀렸네요. 참 감사합니다.”

 

모든 민원이 이렇게 술술 잘 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힘들고 어렵고 오랜 기간 노력해도 과거 잊혀진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민원이 훨씬 많다. 노신사분의 민원은 당사자 본인의 기록은 아니지만, 고인이 된 어문기 병장의 간접적인 기록으로 과거 속 숨겨진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노신사분의 지난 세월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앞으로의 삶은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하고 건강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누군가의 억울함을 대신해서 해결해 주고, 때론 누군가의 가슴 속에 맺힌 한까지 풀어 줄 수 있다는데 조사관으로서 벅찬 보람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신사분과 같이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관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의 방문을 기다리면서 조사관으로서 막중한 소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국방보훈민원과 문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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