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상 0원…“얼마 받았냔 말 들으면 너무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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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상 0원…“얼마 받았냔 말 들으면 너무 억울”

최민수 0 1,270 2018.07.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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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3735.html

등록 :2018-07-18 05:00수정 :2018-07-18 11:12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
②고통은 이어진다

멋대로 자라는 공포
추락하거나 트럭에 받히는 악몽
어쩌다 곤한 잠엔 죽은 전우 보여
불꽃놀이도, 문이 쾅 닫혀도 ‘벌렁’
“8년간 불면 시달려 미치겠어요”

직업군인 꿈꿨던 그들
고교 졸업 뒤 장기복무 원했지만
그날 이후 ‘배 점수’ 모자라 전역
군 “무슨 취업 소개냐” 짜증만
다수 일용직 전전…연 1천만원 미만

국가유공자 인정 ‘바늘귀’
생존 58명중 21명 신청

사건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우리 현대사에는 사건만 남고 그 속의 사람들이 잊히는 일이 종종 있다. 2010년 천안함이 캄캄한 서해로 가라앉은 사건도 그중 하나다. 지난 8년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기록할지를 두고 날 선 다툼이 벌어졌지만, 정작 그곳에서 살아남은 장병 58명은 철저하게 소외됐다. 사회는 지금껏 그들이 얼마나 아픈지 진지하게 물어보지 않았다.

<한겨레>와 <한겨레21>,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 연구팀(김승섭·윤재홍)은 지난 3월부터 넉달에 걸쳐 ‘천안함 생존자의 사회적 경험과 건강 실태조사’(실태조사)를 준비했다. 사전 연구와 취재 등으로 완성된 설문지를 활용한 실제 조사는 지난달 5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됐다. 이 조사에는 전체 전역자 32명 중 75%(24명)가 참여했다. 생존장병 8명은 최소 3시간 이상의 심층 인터뷰에 응했다. 과학적 조사를 통해 천안함 생존장병의 건강 실태를 확인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겨레>는 외면받아온 그들의 8년을 세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생존장병의 직함은 그 바다에서 그들의 시간이 멈춰 섰던 2010년 3월26일 당시의 계급으로 표기했다.

“당직이 아니었다면, 아마 담배를 피우거나 식당에 있다가 죽었을 거예요. 주로 그쪽만 갔으니까….”
2010년 3월26일 밤, 이연규(30) 하사는 함교 바로 밑 ‘전투정보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었다. 천안함은 함수와 함미가 둘로 쪼개졌다. 함미에 있었던 장병은 대부분 전사자가 됐다. 함수에서 희생된 이는 한명이다. 그가 함수에 있었던 것은 복잡한 당직 일정이 만든 우연이었다.

하지만 생존장병들이 살아남은 게 모두 우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하사는 천장이 된 출입문을 향해 기어올랐다. 평소 앞으로 밀어 쉽게 열었던 철문을 안간힘을 써 열어젖혔다. 밖으로 나가 동료들을 끌어당겼다. 먼저 나온 이들 누구도 먼저 탈출하지 않았다. 맨발이거나 옷을 걸치지 못한 채 아수라장을 빠져나온 동료들을 한명씩, 한명씩 구했다. 가까스로 배를 빠져나온 이 하사는 정신을 차린 뒤 주위를 둘러봤다. 그 큰 배가 누워 있었고, 배 뒤쪽은 찢어져 있었다. 달빛이 파도에 부서졌다. “그 달빛이 너무 무서웠어요.” 이 말을 하며 이 하사는 눈물을 흘렸다.

8년이 지났어도 그날의 공포를 지운 생존장병은 없다. 공포는 멋대로 자라 고통이 되거나, 분노 혹은 체념이 됐다. 이 하사는 여전히 악몽을 꾼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큰 트럭에 치여 죽는 꿈이다. 악몽만 꾸는 것은 아니다. 유독 곤하게 잠든 날엔 천안함에서 목숨을 잃은 전우들이 나타나곤 한다. “한번씩 전사자들 꿈을 꿔요. 뒤에서 빛이 비쳐서 주변이 너무 밝아 다들 얼굴이 제대로 안 보이는데 딱 3명만 보여요. 그중 한명이 우리 직별(군대 내 특기)장. 우리 직별에서 그분만 돌아가셨는데 별명이 ‘영감님’이었어요. 그분은 항상 꿈에 나와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있어요. 8년 동안 네번 봤어요. 그 정도로 푹 잔 게 네번이에요.” 이 하사는 8년 전 그날 이후 불면에 시달리지 않은 날이 4일뿐이라고 했다. “보통 일이 아니에요. 잠을 자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미치겠어요.”

고통은 씨앗처럼 생존장병들의 마음에 뿌려졌고 씨앗은 덤불로 자라 몸과 마음을 헤집었다. 국가도 사회도 그들의 고통을 감싸지 않았다. 세상은, 사람은 믿을 것이 못 됐다. <한겨레>와 <한겨레21>,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 연구팀(김승섭·윤재홍)이 공동으로 진행한 ‘천안함 생존자의 사회적 경험과 건강 실태조사’(천안함 실태조사)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생존장병 24명 중 16명이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들의 불신에는 근거가 있었다.
■ “없다, 잠시라도 우산을 들어줄 사람” “기억의 무게에 고개 숙여 보니 버려진 듯 풀어진 내 신발 끈/ 허나 곁엔 오직 비와 바람/ (없다) 잠시라도 우산을 들어줄 사람 앤드 아이 크라이(and I cry).”

2010년 3월26일, 밤 9시를 넘긴 그때, 정주현(28) 하사는 가수 에픽하이의 ‘우산’을 듣고 있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당직을 서야 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일 생각에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갑자기 몸이 붕 떴다. ‘펑’ 하는 소리에 이어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음이 울려 퍼졌다. 그날 이후 정 하사는 그 노래를 다시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삶은 듣고 있던 노래 가사를 닮아갔다. ‘곁엔 오직 비와 바람’뿐이고 ‘잠시라도 우산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그는 2016년 6월 전역을 했다. 전역을 앞둔 정 하사의 가장 큰 걱정은 취업이었다. “군에서 제대 군인 지원을 해주잖아요. 그래서 부탁을 했죠. 제대 3개월 전쯤 대령 한명한테 전화가 왔어요. 대기업 이름까지 대며 취업 지원을 해주겠다고. 그런데 제대 뒤 연락을 하니까 짜증을 내는 거예요. ‘니가 무슨 특기가 있냐, 자격증이 있냐, 어딜 소개해줄 수 있겠느냐’면서….”

생존장병 58명 중 37명이 부사관이다. 이들 상당수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또는 대학을 중퇴한 뒤 직업군인이 되려고 해군에 입대했다. 해군에서는 ‘배 점수’가 있다. 배를 오래 타야 인사평가를 잘 받는다. 인사평가가 좋아야 장기 복무가 가능하다. ‘그날’ 이후 배에 탈 수 없었던 시간은 인사평가에서 ‘마이너스’가 됐다.

공창표(30) 하사는 1년 육상근무를 한 탓에 ‘배 점수’가 모자랐다. 장기 복무 신청을 두번 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한번 더 신청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군에 있어야 하냐’는 생각에 관뒀다. 두번째 장기 복무 신청에서 떨어졌을 때는 배를 타던 중이었다. “폭침 이후 배에 타기 정말 힘들었죠. 그래도 억지로 탔어요. 장기 복무가 안 된다는 걸 알고 배에서 내려달라고 했어요. 작은 배여서 흔들림이 심했거든요. 그날이 계속 생각났어요.”

전역을 앞둔 그는 앞이 캄캄했다. “취업이 제일 힘들었죠. 고등학교 졸업 뒤 8년 동안 군 생활만 했으니까. 자격증 딴 게 있지만 그건 다 군에서만 필요한 것들이었거든요.” 그는 장기 복무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갑판 직렬을 택했다. 함정의 출입항 관련 장비를 취급하고 배의 갑판을 관리하는 업무로, 해군에서 가장 중요한 직렬 중 하나다. 가장 고된 직렬 중 하나로도 꼽힌다. 그 고된 일을 손에 익히며 살아왔지만, 그는 지금 창호(창문)를 만드는 일을 한다.

이번 ‘천안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연 소득 1000만원 미만인 생존장병이 7명, 1000만~2000만원인 장병이 2명이었다. 2000만~3000만원이 9명, 그 이상은 총 4명(무응답은 2명)이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상당수 생존장병은 직업이 없거나, 일용직 혹은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 ‘얼마나 받았느냐’는 질문 ‘얼마나 받았느냐. 죽은 전우들이 불쌍하지 않으냐. 양심선언해라.’ 김윤일(30) 상병은 천안함 관련 뉴스에 달린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아오른다고 했다. “‘너는 얼마 받았어? 얼마 받았길래 이명박한테 그렇게 충성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너무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어요.” 김 상병은 씩씩대며 말했다. “보수나 진보나 다 천안함을 이용하기만 했잖아요. 우리를 ‘장기말’로 쓴 거죠. ‘장기말’로 쓴 것까진 좋아요. 그럼 ‘장기말’한테 적절한 보상이라도 해줘야죠.” 그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분을 풀지 못했다.

국가는 생존장병들에게 보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국민 성금 146억원을 거둬 만든 ‘천안함재단’이 한명당 500만원을 준 게 전부다. 일부 장병은 ‘천안함재단’에서 교육비 명목으로 한 학기에 50만원씩 총 8학기를 지원받았다. 최대 900만원이 이들에게 주어진 보상의 전부였다.

보상만 못 받은 게 아니다. 후유증 치료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함은혁(29) 하사는 2014년 제대 뒤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았다. “가족들한테 미안했어요. 하루는 엄마가 ‘잘 자’라고 인사를 했는데, 제가 ‘응, 나 영원히 잘게’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데….” 그는 다른 생존장병들처럼 포격에 휩싸이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는 꿈을 꾼다. 가위도 자주 눌린다. 어둡고 밀폐된 곳이 무섭다. 잠을 잘 때도 불을 켜놓고 창문을 열어놔야 한다. 그날 이후 유독 소리에 예민해졌다. 문이 ‘꽝’ 닫히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불꽃놀이’를 더는 구경할 수 없었다. 병원에 안 갈 수 없었다. “민간 (정신과) 병원은 군병원하고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치료 방법도 미술치료, 블록치료 등 다양했어요. 여길(병원) 다니고 난 다음부터 좀 좋아졌어요.”

생존장병들에게 정신과 치료는 생존의 문제였다. 하지만 국가의 지원은 없었다. “나라가 지원 같은 걸 해주면 제가 업고 다녔죠.” 함 하사는 씁쓸하게 말했다. 최광수(30) 병장도 마찬가지였다. “심리상담을 하는 게 상당히 비싸더라고요. 시간도 굉장히 많이 필요하고. 한번 진료받거나 상담받는 데 10만원에서 15만원이 들어요. 치료를 1년 반 동안 했어요. 당연히 지원은 없었죠.” 국가는 그들이 군에서 얻은 병을 책임지지 않았다.

■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가 힘든 게 뭐냐면요, 한번씩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어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아, 심지어 우리마저 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이 아려요.” 김윤일 상병은 언젠가 천안함이 잊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은혁 하사도 그렇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우리의 기억도 바람에 흩날려 가겠지. 잊혀진다는 것.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 것.” 미술을 전공한 함 하사는 언젠가 완성하고 싶다는 ‘천안함’ 웹툰의 에필로그에 들어갈 구절도 이렇게 미리 정해뒀다. 정주현 하사도 같은 마음이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요. 많이 잊혔죠. 3월에 찾는 사람도 줄었고. 그래도 내가 거기 있었다는 걸 누군가라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생존장병들의 말대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천안함’도 점점 잊힐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이들을 영원히 기억할 방법이 있다. 생존장병들은 국가가 자신을 ‘국가유공자’로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들이 국가유공자가 되는 것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한겨레>가 국가보훈처에 확인한 결과, 생존장병 58명 중 국가유공자 신청을 한 사람은 21명이다. 이 중 인정된 사람은 6명뿐이다. 2명은 승인 절차가 진행 중이다. 국가유공자가 되는 과정은 사실상 ‘각개전투’였다. 정부나 군당국의 안내도 지원도 없었다. 생존장병 스스로 아픔을 입증하고 국가의 인정을 얻어내야 했다.

생존장병 대다수가 앓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국가유공자를 인정받는 것은 더 어려웠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국가유공자를 신청했는데 ‘보이는 부상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정말 황당했죠. ‘외상이 있어야만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는 거냐’고 담당 의사에게 항의하고 싸웠습니다. 국가유공자 신청은 두번까지만 할 수 있는데, 한번 떨어진 뒤 거세게 항의했고 2016년 초 겨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국가유공자가 됐죠. 그래도 저는 제대 직후에 곧바로 진료를 받아서, 그 진료 기록이 많아서 된 거예요.” 생존장병 중 처음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인정받아 국가유공자가 된 함은혁 하사의 말이다. 하지만 그는 국가유공자가 된 뒤에도 기쁘지 않았다고 했다. “한동안 혼자 국가유공자가 됐다는 생각에 다른 장병들한테 미안했어요. 그런데 동료들이 ‘먼저 길을 열어줘서 고맙다’고 다독여줘서 큰 위로가 됐습니다.”

그가 가까스로 열어놓은 문은 여전히 좁았다. 프랑스로 떠난 최광수 병장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만으로는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두번의 신청을 모두 거절당했다. 이제 기회가 없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생존장병들과 ‘어디 가서 상처를 만들고 나와야 했나’라고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이연규 하사도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했다. 보훈처에서 작성한 이 하사의 ‘국가유공자 요건 심의 결과’ 서류를 보면, “군 복무 당시와 전역 후 의무기록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 내역이 없다”고 나와 있다. “폭침 이후 1~2년 동안 군에서 정신건강과 관련한 질문지를 줬어요. 하지만 제 증상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맞는지 아닌지 확진을 내려주지는 않았어요. 군의관의 정신과 진료는 약만 처방해주는 정도였고요. 전역 후 제대로 정신과 진료를 받아서 국가유공자 신청을 해보고 싶었지만 먹고살기 바빠 병원에 갈 수가 없었죠.” 군에 남아 있을 땐 무성의한 진료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는 밥벌이에 쫓겨 국가가 원하는 ‘증명’을 만들 수 없었다. 고통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 그 증명의 책임을 생존장병들에게 떠넘기는 일은 가혹하다.

김윤일 상병은 8년이 지났지만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았다. 국가가 당연히 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가유공자 인정을 위해 당사자의 ‘신청’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국가는 이들의 상태를 살피고 최소한 신청을 권하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것이 김 상병이 생각하는 ‘상식’이었다. “우리에게 국가유공자 등록이란 ‘국가의 인정’입니다. ‘나라를 지키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았구나. 여전히 고통받고 있구나’ 그걸 인정받고 싶을 뿐이에요.”

최민영 정환봉 기자, 변지민 <한겨레21>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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