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군생활 과정에서 우울증세가 심해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교는 보훈보상대상자에 해당하지만, 국가유공자로는 지정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제주지법 행정1부(부장판사 김현룡)는 A씨의 유족이 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요건비해당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한 보훈대상자유족 비해당 결정을 취소한다"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8일 밝혔다.
1999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A씨는 초임장교 시절 업무부담과 부대 부적응으로 인한 우울장애를 겪었다. 결국 부대 숙소에서 이탈했고, 같은해 7월 북한강 상류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유족은 "A가 숨진 것과 군 직무수행과 깊은 관계가 있다"며 보훈청에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 신청을 했다. 그러나 보훈청 보훈심사위원회는 "A의 사망과 직무수행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할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며 대상자 인정을 거부했다.
불복한 유족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A씨의 사망을 재조사해달라고 진정했고, 진상규명위원회는 재조사를 거쳐 지난해 10월 "임관 후 우울장애 증상을 보인 A의 증세가 짧은 기간 동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사망원인을 '순직'으로 재심사하도록 국방부장관에게 요청했다.
진상규명위원회 재조사 결과를 받아든 유족은 A씨의 군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는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며 보훈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유족들의 주장을 일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아들인 A가 초임장교로서의 심리적 부담과 업무상 어려움, 부대 부적응 등으로 인한 주요우울장애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이어 "단기간에 우울장애의 정도가 심해졌음에도 그 과정에서 지휘관, 상급자, 동료들로부터 지지나 격려 내지 적절한 지휘감독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해 결국 자살에 이르렀다면 국가유공자법이 정한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보훈보상자법이 정한 보훈보상대상자에는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은 A의 국가유공자 지정에 대한 유족 측의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국가유공자법이 정한 국가유공자의 경우 A의 군 직무수행과 사망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A의 사망이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을 주된 원인으로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즉, A씨가 직무를 이탈한 상태에서 숨진 것은 '국가의 수호' 등 국가유공자법이 정한 '경계·수색·매복·정찰'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국가유공자 지정이라는 원고의 주위적 청구 주장은 이유 없어 기각하고, 피고의 보훈보상대상자유족 비해당 결정은 취소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