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청력 장애가 의심됐고 보름 만에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하지만 아이가 세 살 때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일반 초등학교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플루트를 연주하고 태권도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수술과 치료 비용을 다 합치면 2억 원 정도 될 텐데 저희가 낸 건 하나도 없어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지난 5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시드니의 인공와우 및 청각 솔루션 회사 코클리어 본사에서 만난 김에린 양의 어머니 최유정 씨는 주 정부에 거듭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이곳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세심하다”며 “에린이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걱정이 많았는데 청력지원센터에서 학교 교사를 직접 만나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알려줬고 에린이 생활할 교실 전체에 방음 장치를 설치했다. 인공와우를 이식해도 우리가 듣는 것처럼 들을 수는 없고 특히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소리가 잘 안 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호주는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국가보훈처 등이 협업하는 ‘청력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청력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인공와우 이식수술과 이후 관리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에린 양처럼 태어날 때부터 청력 장애를 가지고 있을 경우 수술비와 이후 관리비용을 모두 정부가 지원하며 이는 일반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가지는 25세까지 이어진다.
호주는 청력 건강의 리더이자 ‘히어링 허브(Hearing Hub)’를 자처하는데 호주가 특히 청력에 집중하게 된 배경이 흥미롭다. 호주는 직접 전쟁을 치른 적은 없으나 수많은 전쟁에 파병한 경험이 있는 곳이다. 6·25전쟁에도 1만7000명의 육·해·공군을 파병했다.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참전용사들 가운데 청력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한 참전용사들을 지원하다 보니 청력 지원 프로그램이 자연스레 발달하게 됐다. 크리스 칼리슬 호주 연방정부 보건부 차관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참전 용사들이 호주로 돌아온 1945년부터 청력 지원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이들을 지원하다 보니 경험이 쌓여 청력 문제를 가진 일반 국민으로 확장했다.
프로그램 주체에 국가보훈처가 있는 이유”라고 설명하며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바이오닉 이어(Bionic ear·생체공학적 귀)도 발명할 수 있었고 코클리어와 같은 청각 솔루션 회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참전 용사들이 준 두 번째 선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