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이영관 기자
입력 2022.05.21 05:00
국가보훈처 공무원이 광복회 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광복회장 선거에 출마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보훈처는 광복회 등 보훈단체를 관리·감독하는 국무총리 소속 행정 기관이다.
지난 2월 김원웅 전 회장이 공금 횡령 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사퇴하면서 광복회는 이달 31일 회장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신임 회장의 임기는 김 전 회장의 남은 임기인 내년 5월까지다. 4명이 출마한 상태다.
그러나 원래 선거에 출마할 생각을 갖고 있던 광복회 지부장 A씨는 이달 중순 국가보훈처 사무관 B씨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서 출마 의사를 접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무관은 보훈단체 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A씨에 따르면, B사무관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허현 직대(현재 광복회장 직무대리)가 A씨를 회장으로 지지한다고 선거 운동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났다” “(다른 후보들은 A씨가) 회장 선거 나오면 다 무효가처분 소송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혹시 당선되더라도 사전 선거운동을 해서 서로 분쟁 붙고 광복회가 정상화가 안 되는 방향으로 갈 거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나 회장 출마 안 해’ 이렇게 정리를 한번 해주시고 카톡방에 올려 주세요”라고 말했다. 당시 A씨는 광복회 대의원 추천서를 받는 등 출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고 한다.
국가보훈처는 이에 대해 담당자 실수라고 해명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원만하게 회장 선거가 이뤄져 광복회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관리하던 중 현직 회장(직무대행)과 간부 직원이 공식석상이나 지방을 순회하면서 특정인(A씨)을 지지한다는 민원이 제기됐다”며 “혹시 특정 후보의 사전 선거운동 논란이 일면 자칫 정기총회(회장선거)가 무산될까 봐 선거를 안정화하려는 과정에서 담당자의 의욕이 과해 빚어진 발언 실수”라고 했다.
광복회 안팎에서는 이 일이 알려지면서 “국가보훈처가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두고 선거에 개입한 것 아니냐” “보훈처의 월권”이란 비판이 나온다. A씨 측도 지난 18일 세종남부경찰서에 이 공무원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A씨 측 관계자는 “이런 선례를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발했다”면서 “회장 직무대행이 A씨를 지지하고 다닌 것도 몰랐기 때문에 사전 선거운동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