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 이하 보훈처)가 각계 전문가 및 국가유공자 등이 참여하는 정책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를 출범한 가운데, 제1·2연평해전 관련 인사는 위촉되지 않아 유족 측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 출범식에는 박민식 처장과 자문위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보훈처는 "국가 보훈의 미래 발전 방향 수립에 보훈 수혜 당사자인 국가유공자와 유족, 의료·기업·언론 등 민간 영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국민과 보훈 가족들의 눈높이에 맞는 보훈 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자문위를 출범했다고 밝혔습니다.
자문위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보훈 체계 구현' ·'국가를 위한 희생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사회 문화 조성' 등 주요 정책 의제별로 발전 방안을 논의하고, 보훈처에 제안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자문위원은 총 44명으로 위원장은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활동 기간은 내년 7월 5일까지 1년입니다. 민간 분야의 자문위원으로는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 대표,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최태성 이투스교육 한국사 강사, 김호연 빙그레 회장 등이 있습니다.
■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 등 보훈 당사자 위원 참여
보훈처에 따르면, 인요한 소장의 경우 본인을 비롯해 일가가 '보훈 명문가'라는 점에서 자문위원장에 선정됐습니다. 보훈처는 "인요한 위원장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통역을 맡기도 했고,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한국형 구급차 개발 등)를 인정받아 2012년 특별 귀화 1호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며 "조부와 부친은 독립운동가와 유엔 참전 용사로 독립·호국·민주를 아우르는 보훈 명문가 출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 소장의 부친 고(故) 휴 린튼씨는 6·25전쟁 당시 해군 장교로 원산 전투 등에 참전했고, 조부 고 윌리엄 린튼씨는 독립운동 지원 공로로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국가유공자 및 유족 등 보훈 당사자 위원으로는 김강훈 양궁 선수(공상군경, 2022년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 남자 양궁 개인전 금메달), 김오복 광주 대성여고 교장(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고 서정우 하사 모친), 이지훈 연세이글스 아이스하키 선수(공상군경,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동메달),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전상군경, 예비역 대령), 하재헌 예비역 중사(전상군경, 목함 지뢰 폭발 사고, SH공사 장애인 조정팀 소속) 등이 위촉됐습니다.
이상의 위원 명단을 보면 보훈처가 독립운동, 6·25전쟁, 광주민주화운동,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 목함 지뢰 폭발 사고 등 여러 세대에 걸쳐 '국가 수호 공로'가 있는 대상자들을 선정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나타납니다.
■ 연평해전은 없어…유족 측 "'빠뜨려서 죄송하다'고 하더라"
지난 6월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승전 20주년 기념식’에서 유족이 해전 영웅들의 얼굴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눈물 흘리고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지난 6월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승전 20주년 기념식’에서 유족이 해전 영웅들의 얼굴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눈물 흘리고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그러나 연평해전 참전 유공자 및 유족은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제1·2연평해전은 우리 해군이 1999년과 2002년 6월, 해상 교전 끝에 북한군을 물리치고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수호한 전투입니다. 특히 올해로 20주기를 맞은 제2연평해전은 지난 6월 29일 해군참모총장 주관 기념식에서 '승전(勝戰)'으로 승격됐습니다. 올해부터 행사 명칭을 '승전 기념식'으로 바꾸고, 전적비도 '전승비'로 교체하기로 했습니다.
연평해전 참전 유공자 및 유족도 국가 수호 공로가 있는 만큼, 보훈 당사자 위원에 선정돼야 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족 측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서영석 / 제2연평해전 유가족 회장(고 서후원 중사 부친)
"'승전 20주년'이라고 (승격)했는데, 승리하면 뭐합니까. 귀찮은 존재가 됐는데. (보훈 차원에서는) 달라진 게 없어요. 말 잔치, 구호뿐이에요. 옛 정부나 현 정부나 똑같아요... 보훈처하고 통화를 해보니까, '빠뜨렸다'고 해요. '빠뜨려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해보겠다'고 해요. 말이 됩니까. 처음부터 (우리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거죠."
서영석 회장은 '보훈처로부터 위원 선정과 관련해 사전에 어떤 제안을 받거나, 나중에라도 제외된 이유에 대한 설명 등이 있었나'라는 질문에 "전혀 그런 거 없었다. 오늘(6일) 언론 보도 보고 (자문위 출범 사실을) 알았다"며 "(우리에게도) 의향을 물어보고 제외시키는 거는 괜찮은데, 왜 일방적으로 (선정)하나"라고 답했습니다.
■ 보훈처 "특정 사건 기준으로 선정한 것 아냐…필요한 분 추가 위촉 검토"
이에 대해 보훈처 대변인실은 7일 오후 기자에게 보낸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자문위원 중) 국가유공자는 특정 사건 기준으로 선정하지 않았다"며 "청년 유공자, 순직 군인 유족, 전투 중 부상, 의무 복무 중 부상자 등 주요 유형별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순직 군인 유족인 김오복 위원의 경우, 현직 교장 선생님으로서 미래 세대에 대한 보훈 교육 등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선정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보훈처는 "이번 정책자문위원회는 다양한 국민의 의견 반영을 위해 국가유공자, 의료, 기업, 작가, 언론인, 문화인 등 각계각층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을 선정했다"며 "특히 국가유공자 가족(인요한, 이국종, 김현정, 이승찬 위원 등)이나 국가유공자 지원 활동을 펼치시는 등 평소 보훈에 관심을 가진 분들을 중점 선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훈처는 "위원으로 선정된 분 외에는 별도 안내를 하지 않았다"며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구성은 변동이 가능하므로 향후 논의 주제를 고려해 의견 수렴 등이 필요한 분의 추가 위촉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