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 남편 평생 간호했는데, 국가로부터 받는 거 하나도 없어
무릎 연골 닳은 다리로 폐지 줍는 참전유공자 미망인 이은순
전쟁서 다친 군인 아니면 참전수당 배우자 승계 안 돼
(동두천=뉴스1) 양희문 기자 | 2022-06-25 06:00 송고
“전쟁 후유증으로 고생한 남편 평생 뒷바라지 했는데, 아무 혜택도 없어.”
국가유공자 명패가 달려있는 집은 허름했다. 건물 곳곳이 갈라져 있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벽지는 곰팡이와 비 샌 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전날 내린 폭우로 선선한 날씨를 보였지만 이 집은 달랐다. 통풍이 되지 않아 찜질방에 온 것처럼 후덥지근했다.
24일 오후 3시께 찾은 경기 동두천시 생연동 한 주택 모습이다. 이곳에 사는 이은순씨(82)는 6·25전쟁 참전 유공자 미망인이다. 그의 남편 김국진씨는 전쟁 후유증으로 평생 고생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아픈 남편을 간호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씨는 “남편이 통신병으로 근무했는데 교대근무도 없이 주야로 쪼그려 앉아 있다 보니 늑막염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군 복무 2년 만에 의병제대를 했다”며 “후유증으로 평생 병원을 달고 살았는데, 4년 전에는 파킨슨병까지 찾아와 누워만 있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로 생계는 더 어려워졌다. 국가로부터 받는 참전수당 35만원 지급이 끊겼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상이군이 아닌 이상 배우자 또는 자식들에게 참전수당 승계해주지 않는다. 김씨의 경우 의병제대를 했지만 육군병원 기록에는 없어 이씨는 참전수당 승계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씨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7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 공과금, 식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빠듯한 생활비다. 병원비도 부담이다.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이씨의 무릎 연골은 닳아 없어졌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지만 수백 만원에 달하는 돈이 없어 매주 두 번씩 진통주사만 맞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부족한 생활비를 메꾸기 위해 폐지를 줍는다.
이씨는 “주사 한 번 맞을 때마다 1만7000원인데 이것도 큰 부담이다. 돈이 부족하니 폐지를 주울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남편을 만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남편 덕분에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 자랑스럽다”고 했다.
6·25 참전유공자들은 현행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쟁 당시 기록이 적혀있지 않거나 유실되는 경우가 많은 탓에 많은 참전용사가 상이군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서다. 또 전쟁 이후 후유증에 대한 인정을 받기 어려운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최호영 6·25참전유공자회 동두천지회장 대행은 “전쟁 중 모두가 다치고, 후유증이 남았다. 그런데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6·25 전쟁 참전 미망인은 정부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그들도 전쟁 이후 고생하는 남편들을 위해 평생 봉사하며 살았는데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기병 6·25참전언론인회장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인데 참으로 답답하다”며 “현 정부가 6·25 참전 유공자와 유가족들의 처우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만큼 조속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기북부보훈지청 관계자는 “참전유공자 배우자분들이 참전수당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문의를 한다.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현재 제도상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