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4일은 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 7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015년 발생한 목함지뢰 사건은 나의 일상을 완전히 앗아갔다. 19차례의 전신마취 수술과 4개월의 재활을 거쳤지만 사고 전으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북한의 지뢰 도발을 기억하자며 열린 ‘Remember 804 결의대회’에 참석하여 목함지뢰 도발 사건을 잊지 않고 북한의 도발에 굳건히 대응하겠다고 다짐하는 선후배 군인들을 만났다. 나는 젊은 나이에 마주한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기고 장애인 조정 선수로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잊혀 가지만, 아직 기억해주시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기에 힘을 낼 수 있다.
청년 국가유공자들은 전역 후에도 두 곳의 전장에서 싸운다. 하나는 ‘생존을 위한 싸움’이다. 국가유공자에게 사고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삶이다. 살아가는 것이 막막해지고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해야 한다. 또 하나는 ‘잊히지 않기 위한 싸움’이다. 부상 장병들에게 남은 것은 명예밖에 없다. 국가를 위해 공헌했다는 자부심은 변치 않지만, 8월인데 우리 희생에 관해 기사 한 줄 나지 않을 때면 세상에서 잊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 것은 사실이다.
청년 국가유공자에게 국가보훈처는 평생을 함께하는 전우와도 같다. 내가 장애인 올림픽을 목표로 하며 조정 선수로 제2의 인생을 사는 데는 많은 분의 응원과 함께 보훈처의 지원이 있었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을 갖고 군 복무를 하는 청년들을 위해, 복무 중 다쳐도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보훈 제도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청년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훈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가유공자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국가유공자나 군인을 예우하는 문화가 아직 우리 사회에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연평해전, 천안함, 연평도 포격전, 목함지뢰 도발까지 군인들이 국토 수호의 최일선에서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건들이 제대로 기억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 SNS 메시지가 ‘목함지뢰 도발사건 잊지 말아주세요’인 이유이다.
나는 보훈처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위상도 높이고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 보훈처를 보훈부로 바꾸는 법률이 발의되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나는 여기에 적극 공감한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은 보훈 부처를 ‘부’로 운영하고 위상도 높다. 하물며 남북 분단의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보훈처가 부가 아닌 것은 정부가 국가를 위한 희생을 책임지는 역할을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군에서 다리를 잃기 전, 나는 ‘보훈’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다. 지금의 나는 보훈이 우리나라의 안보와 발전을 뒷받침하는 애국심과 희생정신 같은 정신적인 토대를 만드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우리나라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 민주유공자, 제대 군인까지 업무 대상이 넓고 22개 유엔 참전국에 대한 외교까지 담당한다. 나 같은 군인들의 희생이 잊히지 않게 국민과 미래 세대에게 알리고 교육하는 일도 한다.
보훈부가 되면 청년 국가유공자는 물론 군에서 전역한 제대 군인들을 위한 보훈 제도 역시 강화될 것이고 선후배 군인들도 더 안심하고 임무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강한 국방으로 이어져 국가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나는 정부가 보훈부 격상을 통해 보훈이 우리 정부에서 가장 가치 있는 역할이며, 대한민국이 국가를 위한 희생을 제대로 책임지고 기억하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국가유공자에게 평생을 함께하는 전우가 좀 더 든든하고 강해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