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찾아와요"…잊혀가는 영웅들의 마을 '보훈원'
송고시간2023-06-18 07:00
입소자 평균연령 88세…죽음 다가올수록 외로움 커져
"보훈원이 있는지도 몰라…삶의 마지막까지 관심을"
[인턴액티브] "아무도 안 찾아와요"…잊혀가는 영웅들의 마을
(수원=연합뉴스) 임지현 조서연 인턴기자 = #1. 2012년 보훈원에 입소한 6·25 참전유공자 김영복(91) 씨는 70년 전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매년 6월이 돌아오면 그때의 기억도 함께 찾아온다. 화천·금화지구 전투에 참여했던 김씨는 당시의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땐 전쟁이 무서운 것도 몰랐어, 젊었으니까. (6·25 때로) 돌아가면 다시 싸울 거야. 우리나라 지키는데 젊은 사람이 주저하면 안 되지"
#2. 15년 전, 박춘자(85) 씨는 6·25 참전유공자인 남편의 손을 잡고 보훈원에 들어왔다. 당뇨병을 앓던 남편은 보훈원에 들어온 지 4년 만에 곁을 떠났다. 박 씨는 남편이 없는 보훈원에서 살길이 막막해 퇴소를 고민했지만, 처지가 비슷한 보훈원 사람들이 또 다른 가족이 되어줬다.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서로를 이만큼이나 이해하고 기억해 줄 곳은 없었다.
"결혼한 지 3일 만에 남편이 전쟁 나가서 못 돌아온 사람도 있어. 신랑 얼굴도 모르고, 자식도 없고, 남편도 없이 지금까지 혼자 살아온 거지.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야"
"무서운 것도 몰랐어, 젊었으니까"
경기도 수원에 있는 보훈원은 국가유공자와 유족이 모여 살며 여생을 보내는 곳이다. 부양의무자가 없는 국가유공자 본인이나 유족 등이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호 시설로, 현재 총 358세대가 입소해 살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지난 8일 보훈원에서 만난 입소자들은 보훈원 생활이 "행복하면서도 외롭고 쓸쓸하다"고 토로했다.
입소자들은 전담 주치의의 건강 관리와 연금 관리 등의 지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식물을 키우거나 서예를 하는 등 취미 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김씨는 "종교 생활도 마음껏 하고, 취미로 서예를 배워 전시회까지 열 수 있어 보훈원 생활이 만족스럽다"면서 "하지만 코로나 이후 모든 만남이 제한돼 아주 외로웠고 같이 보훈원에서 살다가 돌아가시는 분을 보면 너무 안타깝기도 했다"고 말했다.
보훈원 입소자의 평균 연령은 88세. 함께 사는 고령층 입소자의 죽음을 마주할 때가 많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어제 함께 밥을 먹은 입소자의 죽음을 뒤로 하고 또다시 내일을 맞아야 한다. 이처럼 삶과 죽음이 맞닿은 곳에서 국가유공자가 생의 마지막을 맞아도 세상은 조용하다.
입소자들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다가도 "죽을 때가 되면 혼자"라는 생각하는 이유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한 달 평균 5명 정도 오던 자원봉사자들의 발걸음마저 끊기며 외로움은 오롯이 입소자들의 몫이 됐다.
호국보훈의 달인 이번 달에도 자발적으로 보훈원을 찾은 개인이나 단체는 없었다고 한다.
독립유공자의 유족 자격으로 보훈원에 입소한 최정남(80) 씨는 "코로나 전에 몇몇 단체에서 과자나 장갑을 만들어서 줬을 때 다들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며 "이젠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고 가족도 없으니 명절과 연말이면 특히 쓸쓸해진다. 우린 잊힌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빈손이라도 좋으니 단체든 개인이든 와서 손도 잡아주고 말동무를 해주면 좋겠다"는 그것이 그의 바람이다.
보훈원의 가장 큰 고민도 사람들의 무관심에 따른 입소자들의 외로움이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사람이 주는 온기를 채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인채 보훈원장은 "입소 어르신을 중심으로 한 종합돌봄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어르신들이 나이가 드실수록 '내가 죽으면 내 옆에 울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며 외로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인들의 경우 이러한 보호시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인근 지역 기업 또는 봉사단체 외에 찾는 이가 많지 않다"며 "고령의 국가유공자, 유족 등이 국민들 사이에서 잊히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이분들이 마지막까지 영예로운 삶을 보낼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