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이버 범죄 및 대테러 위협 등 안보 분야의 포괄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함께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를 참배했다.
대한민국 경찰 제복을 입고 거수경례로 예를 올리는 모습을 많은 미국인이 지켜봤다. 그들 눈에는 내가 누구이며 동양인이 왜 순직한 미군을 추모하는 곳에 와서 그렇게 정중히 예의를 표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수많은 미국인이 자기네 영토를 지키다가 사망한 것도 아닌데, 수도 한복판에 그렇게 별도의 기념비를 만들고 추모 인파가 끊이지 않는지 의아했다. 그러다 문득 느꼈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문화의 힘을.
비록 조국 영토를 지키다가 산화한 건 아니지만,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소중한 일상과 후손의 번영을 지키는 힘이 될 수 있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보훈의 가치와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라가 미국이며, 그런 문화를 통해 세계 최강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 군인이나 경찰관 사이에는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면 비록 나는 사라지더라도 조국과 사회가 나를 기억할 것이며 내 가족을 보살펴줄 것'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선진국치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제대로 예우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를 영토, 국민, 주권이라고 하는데, 보훈은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을 보호하며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만, 제복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보훈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나라에 평화와 번영은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격상된 것은 크게 반길 일이다.
경찰에서도 최근 '100원의 기적 운동'을 통해 보훈의 가치를 되새기고 있다. '적어도 순직 경찰관 자녀들에게만큼은 동료들의 애틋한 마음이 전달됐으면 좋겠다. 순직한 부모를 대신해 경찰관 삼촌과 이모가 그분들을 잊지 않고 있음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처음 이 제안을 했을 때 전국의 모든 경찰관이 참여한다면 매월 약 1385만원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시작하고 보니 예상했던 금액보다 훨씬 많은 모금이 이뤄지고 있다. 시작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4000만원 이상이 모금돼 순직 경찰관 자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
나는 이 운동을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14만 경찰관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전국의 모든 경찰관이 매달 자신의 월급 명세표를 보며 잠시나마 순직한 동료들을 추모할 수 있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순직 경찰관 자녀들에게 값을 매길 수 없는 희망과 용기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FBI 정예 요원을 교육하는 NA(National Academy) 벽에 새겨진 글은 다시 한번 보훈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May we never forget(부디 절대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