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서 죽으면 개죽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김형남의 갑을,병정] 나라 위한 희생에 등급 매기는 국방부
22.02.10 06:12l최종 업데이트 22.02.10 06:12l김형남(khn8911)
2016년 군 복무 중 아급성 백혈병에 걸렸으나 군의관의 안이한 대처에 부대 훈련 기간까지 겹쳐 제대로 된 진단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뇌출혈 합병증으로 사망한 고 홍정기 일병의 이름이 지난해 말, 다시 국회 국방위원회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국방부 서면질의를 통해 '홍 일병의 사망 원인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과 '군 인사법상 순직 유형을 구분하고 있는 것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순직 유형을 통합하여 운영토록 하는 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질의했다.
질의의 배경을 살피려면 현행 군인 순직 제도부터 살펴봐야 한다.
왜 유독 군인만
공무원이 직무 수행과 관련된 이유로 사망하면 '순직'으로 예우한다. 군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타 공무원과 달리 군인의 순직은 3가지 유형(순직Ⅰ,Ⅱ,Ⅲ형)으로 나누어 규정한다. 군 인사법은 사망 원인에 따라 유형을 3개로 범주화하여 구분하고 있는데, Ⅰ형은 고도의 위험을 무릅쓴 직무수행 중 사망한 경우, Ⅱ형은 국가 안보나 국민 보호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 중 사망한 경우, Ⅲ형은 국가 안보나 국민 보호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 중 사망한 경우다. 군 인사법 시행령은 3개 유형의 구분 기준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보상과 예우에는 순직 유형에 따른 차이가 없다. 순직자는 누구나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보상도 똑같이 받는다. 굳이 유형을 구분할 실익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뚜렷한 이유도 없이 나라를 위한 희생에 불필요한 등급을 매기는 행태에 분노를 표하는 순직자 유가족들이 많다. 직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사람에게 굳이 '국가 안보, 국민 보호와의 직접적 관련 유무'를 꼬리표로 붙여둘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경찰·소방 당국도 순직자 유형 구분을 하지 않는다. 유독 군만 그렇다.
홍 일병 유가족들도 아들의 순직유형 변경을 위해 3년이 넘도록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홍 일병은 현재 순직Ⅲ형으로 분류되어 있다. 적용된 시행령상 기준은 2-3-9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등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사유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악화되어 사망한 사람'이다. 그러나 유가족은 홍 일병이 순직Ⅱ형의 2-2-3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질병이 발생하거나 악화되어 사망한 사람'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급성 백혈병은 발병 후 증세가 뚜렷하기 때문에 조기에 진단하여 적절히 치료하면 20대의 경우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60%를 넘는다고 한다. 만약 홍 일병이 영내 생활을 해야 하는 병사가 아니었다면 제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뿐인가, 발병·악화 시기와 부대 전술 훈련 기간이 겹치지 않았다면 외부 병원으로 나가 제때 진단이라도 받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의심 증세들을 확인하고도 서둘러 조치하지 않은 군의관의 책임도 크다.
유가족은 '직무수행과 인과관계가 있는'이 아닌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이 직접적 원인'을 적용해서 홍 일병의 죽음에 대한 군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망자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지원단은 설훈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 '홍 일병 유족은 순직Ⅱ형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는 순직Ⅱ형을 받아 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함입니다'라고 써놓고 이어서 순직유형은 국가유공자 지정에 절대적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자식 잃은 유가족을 모욕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순직과 국가유공자 지정은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 순직은 국방부 소관이고 국가유공자는 보훈처 소관이라 심의와 지정을 담당하는 부처부터 다르다. 유가족이 보훈처에 가서 국가유공자 지정 신청을 하건 안 하건 국방부는 신경 쓸 까닭이 없다.
그런데 유가족은 국방부가 홍 일병 죽음의 책임을 면하려고 사망 원인을 순직Ⅲ형으로 분류해놓은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국방부는 유가족의 속마음을 제멋대로 예단하여 국회의원들에게 답변한 것이다. 다른 답변 내용 역시 대부분 국방부에 유리하게끔 짜깁기되어 있다.
국방부의 이상한 개정
그러던 국방부가 지난 1월, 돌연 순직 유형 분류 기준을 조정하는 군 인사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 예고를 발표했다. 순직Ⅲ형의 2-3-1 '순직Ⅰ형 또는 Ⅱ형에 해당하지 않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 즉 국가안보, 국민보호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중에 사망한 사람도 순직Ⅱ형으로 분류하겠다는 것이다.
이상한 개정이 아닐 수 없다. 일단 2-3-1 규정은 순직Ⅲ형 분류 기준의 일반 규정으로 이외 순직Ⅲ형 분류 기준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일반규정인 2-3-1을 Ⅱ형으로 옮겨버리면 논리상 나머지 Ⅲ형 규정들 역시 Ⅱ형으로 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국방부는 2-3-1만 옮겼다.
가령, Ⅲ형의 2-3-6 '출장 또는 파견기간에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중 사고 또는 재해로 사망한 사람'은 Ⅱ형으로 옮겨지는 2-3-1과 마찬가지로 국가안보, 국민보호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중에 사망한 사람인데 일반규정은 Ⅱ형이 되고, 구체규정은 Ⅲ형이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국방부는 입법예고에서 이러한 개정의 이유로 '평시 교육훈련 및 직무수행은 유사시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를 위한 것임에도 이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순직Ⅲ형으로 분류함으로써 유족들이 지속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정작 유족들은 국방부의 규정 개정을 반기지 않는 형국이다. 순직 유형 구분을 없애라는 목소리가 자꾸 커지니 국방부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면피용으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규정 개정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순직Ⅲ형은 더더욱 '딱히 국가를 위해 희생한 것은 아니지만 순직으로 인정해준' 천덕꾸러기 취급을 면할 길이 없다.
군대 가서 죽으면 개죽음이요, 죽어서도 차별받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선 후보들도 그렇다. 보훈단체를 찾아가 머리를 숙이고, 상이군경 손을 잡고 애달프게 쳐다본다고 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예우는 제도로 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군인 순직유형 구분을 없애고 다른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순직'으로 통합하는 것이 맞다. 희생과 죽음에는 무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