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3천명 양성, 7천8백명 사망.실종
그동안 베일에 감추져온 북파공작원의 실상이 정부에 의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군정보사령부가 21일 국회 국방위 이경재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 51년 육군첩보부대(HID)가 창설된 뒤 94년까지 양성된 북파공작원은 1만3천여명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중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는 7천8백여명, 부상자는 2백여명이다. 정보사에 따르면 나머지의 생사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파공작원의 규모와 관련해서는 지난 51년부터 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될 때까지 7천7백26명이 사망.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왔을 뿐이었다. 군 당국은 72년 이후엔 북한에 침투할 경우에 대비해 요원교육만 시켰다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는 70년대 말까지 북한지역 내 침투활동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대 2억4천만원의 보상금 법안 국회 계류중
이경재 의원측은 “북파공작원 중에는 가족이 있거나 18세 이하의 청소년도 있어 북파공작원 및 그 가족들에 대해 국가차원의 보상과 보훈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면서 북파공작원에 대한 보상과 예우에 관한 법률안 통과를 촉구했다.
현재 북파공작원에 대한 보상과 예우에 관해서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와 국방부에 특별법 제정을 권고한 이후 8월11일 김성호 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의원 10여명이 북파공작원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특수임무 관련 유공자 보상에 관한 법안’과 ‘특수임무 유공자예우에 관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유공자 보상법안은 국무총리 산하에 유공자 보상심의위원회를 두어, 최소 1억2천만원에서 최대 2억4천만원의 보상금을 줄 수 있도록 했으며, 유공자 예우법안은 북파 공작원 유가족에게 교육과 취업지원 등 광주 민주화 운동 유공자와 동일한 예우를 받도록 하고 있다.
`대한민국 HID 북파공작원' 설악동지회원 1백여명은 지난 8월31일 경북 포항에서 북파 공작원 실체를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갖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지난 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시도 사건을 계기로 국가 보위 차원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민간인 신분의 무장 북파 요원들의 실체 인정과 명예회복 차원에서 특별법 제정을 거듭 촉구한다”면서 “만먁 이 법 제정에 방해가 되는 자는 누구든 우리의 적이 될 것임 분명히 밝힌다”고 주장했다.
북파공작원의 실체는 지난 1971년 8월23일 인천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던 북파 특수부대원 23명이 인권 유린과 열악한 보급, 대우 등에 불만을 품고 부대장과 교관 등 17명을 죽인 뒤 인천 송도에서 버스를 빼앗아 타고 서울 대방동까지 진출한 이른바 '실미도 사건'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실미도 사건을 일으킨 북파공작원들은 출동한 군·경과 교전끝에 버스안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해 15명이, 군·경의 응사로 2명이 숨졌으며 6명이 다쳤다. 부상자 중 2명은 그 뒤 병원에서 사망했고 4명은 군사재판을 거쳐 총살돼 모두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최근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실미도’가 제작에 들어가면서 국방부에 촬영 협조를 요청했으나 이를 거부할 만큼 아직도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군당국은 이 사건의 수사기록과 공소장, 판결문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군사기밀로 분류해 놓고 일반인 열람을 불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