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니…. 사는게 정말 고통스럽네요.”
52년전 18살때 학도호국단의 일원으로 전쟁터에 나갔던 강택심(70·경기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씨에게는 아직도 6.25가 끝나지 않았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보훈병원에 입원한 강씨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군에 입대해 이듬해 11월 금화지구 전투에서 왼쪽 다리에 포탄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전쟁 뒤 가정을 이루기도 했지만 잊을만하면 도지는 상처 때문에 늘 병원을 들락날락 거리느라 경제활동을 거의 못했고, 아내가 허드렛일을 하며 4남2녀를 키웠다.
그는 요즘 다시 절망에 빠졌다. 1년전부터 상처부위가 썩어 들어가 지난달 28일 입원한 그는 의사로부터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그는 병원침대에서 “다리 자르고 퇴원하면 집근처 병원을 다녀야 하는데, 한달 연금 98만5천원으로 방값과 생활비를 내고나면 치료비와 약값에 쓸 돈이 있을 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이용사 3만여명 …589명 아직 보훈병원에 궁핍한 생활보다 '사회관심 부조' 더 서러워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상이용사들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처럼 신체적 고통과 경제적 궁핍의 이중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또다른 상이용사(6급) 이종원(75·경기 연천)씨도 1952년 강원도 양구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뒤, 평생을 연금으로 생활해왔다. 그는 “왼손과 어깨에 총탄 파편이 깊숙이 박혀 일하는 게 불가능했다”며 “연금 73만원으로 생활하다보니 늘 사는 게 팍팍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15년전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이후로는 혼자서 병치레를 하고있다. “아들 하나가 있긴 하지만,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처지라 기댈 수도 없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4월 발표한 ‘참전유공자 현황’에 따르면, 한국전쟁때 부상을 입어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인원은 모두 3만1119명. 이들 대부분은 전쟁 이후 경제활동을 접어야 했기 때문에 연금으로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가보훈처 보상급여과 쪽은 “상이용사들은 부상정도에 따라 1~7급으로 분류돼 최고 294만4천원에서 최저 19만3천원의 연금을 받는다”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아 연금수령액을 매년 조금씩 인상하고 있지만 예산문제로 만족스런 수준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 따르면,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5개 보훈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국전쟁 상이용사들은 모두 589명이다.
지난 1964년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화랑용사촌’이라는 한국전쟁 상이용사들의 집단촌을 설립해 상이용사들의 재활을 도우고 있는 김삼근(69)씨는 “우리 사회가 잊혀져가는 상이용사들에게 좀더 따뜻한 관심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영인 기자 yiye@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