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의약 분업이 일어나 장기적인 입원이 불가능해
여름은 시골에서 지내기로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저는 의령에 아버지가 근무하시며 지내시던 집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아주시골이라 공기도 좋아서 아버지 완쾌에 도움이 될까해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거기에는 전에 키우시던 갖태어난 백구가 있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밥을 종종 주어서 아주 건강했습니다,,,,
일년넘게 아버지와 지낸탓인지 아버지를 무척 잘따랐습니다,,
이름이 "용"이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용이가 걱정되어 가보니 용이 오른쪽눈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누가 돌봐 주지 않아 피가 응고 된채로 ...
아마 용이도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도 슬펐나 봅니다..
저는 한여름 아버지와 지낸 이곳의 생활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똑같은 하얀 모시잠옷을 입고 혼자계시면서 가꾼 앞마당에
고추,가지등을 를 함께따고..
오래먹으려면 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꽁꽁얼려두라고 그러셨습니다..
아직도 저희집 냉장고에 고추가 꽁꽁 얼려져있습니다..
천막으로 대충둘러만든 샤워실이지만 어느부자집 목욕탕
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마다 찾아오는 다람쥐.. 아버지와 마루에 앉아
다람쥐가 몰래놓아둔 과자를 먹는 모습을 쳐다보며 웃고...
그런 여유는 잠시뿐,, 또다시 시작 되는 진통...
병원에서 진통제 주사기를 받아서 어머니께서 주사를
놓아주셨습니다..
밤에는 진통이 너무 심해서 잠을 주무시지 못하시지 못하십니다.
오른팔에 세포가 퍼져 풍선 만큼 불어있는 아버지팔을 매일
마다 주무르고 또 주무르고 진통제도 듣지 않아 뜨거운 물에 찜질했다가 차가운 얼음으로 찜질했다가 어떻게든 안아프게 하려고 이것저것
다해봐도 계속 아파서 펑펑 우시는 아버지를 보고 어쩔줄몰라 아둥바둥거리는 어머니..
하지만 병원에 계셨을대만해도 아버지는 주위사람들이 저사람 환자 맞느냐고 의아해할 정도로 강하셨습니다..
군인정신은 변함없이 그대로이셨고 그 강직한 성
품은 현역군인시절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손으로 세수도 하실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지시고 몸무게는 70kg에서
60kg까지 줄었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매일 저와 몸무게를 재셨습니다,,
살이 빠지면 힘을 못쓰니 매일 많이 먹고 살을 찌
워야 한다며 하루에 두세번씩 몸무게를 재셨습니
다
하지만 매일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어쩌나 300g정도 오르면 무척이나 좋아하시며
제게 자랑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병원에 계시면서 어린애가 되셨
습니다..
항암제의 강한 약효 때분에 아버지의 머리 숱은 거의
다빠져 버리고 아침마다 배개위에 머리카락을 주으시며
눈물을 뚝뚝흘리시던 아버지...
추석날은 가족과 에서 지내고 싶으시다며 의사의 반대도
뿌리치고 진통제 주사기를 챙겨거지고 집으로 오신 아버지..
그날이 아버지와 함께보낸 마지막 명절이 될줄이야....
머리를 깍고 싶으시다며 같이 동네 미용실로갔는데 나의 긴머리를 어루만지시며 머리끝이 상했다고 같이 자르자고 그러셨는데..
긴머리 자르는게 아까워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리니까
아버지도 그럼 안자르겠다면 같이 때를 써서 결국 제가 지고 아버지와 같이 앉아서 머리를 잘랐어요....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머리를 잘랐어요..
부녀지간 보기 좋다며 옆사람이 부러워했죠...
당신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