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2021구단50089 판결
유인호 변호사| 입력 : 2022-01-01 06:00| 수정 : 2022-05-30 03:46
1. 들어가며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는 모두 공무수행 중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을 의미하지만, 그 인정범위와 보상의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국가유공자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고, 보훈보상대상자는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는 모두 발생한 ‘상이’에 ‘공무기인성’을 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그 상이가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에 따라 구별된다는 차이점도 있다.
‘국가유공자’ 또는 ‘보훈보상대상자’ 사건에서 주로 문제되는 유형들은 ⅰ) 발생한 상이가 이전부터 존재한 기왕력 등에 따른 것인지에 대한 문제, 즉 공무기인성에 관한 문제들과 ⅱ) 발생한 상이가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들이다.
특히 발생한 ‘상이’와 그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필요하지만, 의학적으로는 과학적 인과관계의 범위를 매우 좁게 보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자료(간접증거 포함)의 확보, 관련 사례와의 비교, 제도의 취지에 대한 이해와 논증이 중요하다.
오늘 살펴볼 판례는 30년 전 군복무 기간 중에 발생한 상이에 대해서 관련 증거에 기초하여 보훈보상대상자를 인정한 서울행정법원 2021. 11. 3. 선고 2021구단50089 판결이다.
2.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의 구별
2011년 개정 국가유공자법 제4조 제1항 제6호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의 성격이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을 국가유공자의 인정 요건으로 삼고 있다. 즉, 국가유공자중 하나인 공상군경을 “군인이나 경찰, 소방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상이(질병을 포함한다)를 입고 전역하거나 퇴직한 사람으로서 그 상이정도가 국가보훈처장이 실시하는 신체검사에서 상이등급으로 판정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달리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상이를 입은 사람’은 보훈보상자법 제2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보훈보상대상자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를 나누어 규정한 취지는 보훈의 대상 중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예우를 받아야 할 사람은 국가유공자로, 단순히 보상이 필요한 사람은 보훈보상대상자로 구분하여 그에 합당한 예우와 지원, 보상을 함으로써 보훈의 정체성 강화를 도모하기 위한 데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국가유공자법은 제4조 제2항에서 국가유공자의 요건에 해당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과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시행령 제3조 [별표 1]은 군인 또는 군무원의 경우 제2-1호 (가)목 및 제2-2호에서 ‘경계·수색·매복·정찰, 첩보활동, 화생방·탄약·폭발물·유류 등 위험물 취급, 장비·물자 등 군수품의 정비·보급·수송 및 관리, 대량살상무기(WMD)·마약 수송등 해상불법행위 단속, 군 범죄의 수사·재판, 검문활동, 재해 시 순찰활동, 해난구조·잠수작업, 화학물질·발암물질 등 유해물질 취급, 인명구조·재해구호 등 대민지원 또
는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직무수행 또는 ‘위 직무수행과 직접 관련된 실기·실습 교육훈련(전투력 측정 또는 직무수행에 필수적인 체력검정을 포함한다)’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고나 재해로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은 사람을 국가유공자로 정하고 있다.
3. 사건의 전개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1979. 9. 6.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1988. 2. 23.부터 1989. 8. 31.까지 공수특전여단(소위 ‘특전사’)의 지역대장으로 근무하였고, 이후 2001. 10. 31. 소령으로 전역하였다.
원고는 1988. 5. 14.부터 같은 해 5. 28.까지 사이에 지역대 대항 격구 시합을 하다 다른 병사의 어깨에 얼굴을 부딪치면서 상악 전치 3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여 지지대 역할을 하는 치아로 하는 6본 브리지(6 unit Bridge) 시술을 받았다.
그리고 2020. 6. 8.경 서울북부보훈지청장에게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2020. 11. 6. ‘국가유공자(공상군경) 및 보훈보상대상자(재해부상군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결과를 근거로 삼아, 비해당 결정을 하였다.
(2) 원고의 주장 요지
원고는 1988. 5. 14.부터 같은 해 5. 28.까지 사이에 충남 태안군 몽산포 해상침투훈련장에서 교육훈련계획에 따라 해상침투훈련의 일환으로 지역대 대항 격구 시합을 하던 중 럭비공을 잡기 위해 점프를 하였다가 착지하면서 같은 지역대 병장의 어깨에 얼굴을 부딪쳐 상악 전치 3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여 6본 브리지 시술을 받았는바, 국가유공자(공상군경) 또는 보훈보상대상자(재해부상군경)에 해당함에도, 피고는 이와 다른 전제에서 원고의 등록신청을 거부하였는바,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4. 서울행정법원 2021구단50090 판결의 요지
(1) 국가유공자인지 여부(소극)
지역대 대항 격구 시합이 교육훈련계획에 따른 것이 었다 하더라도, 이는 H 모양의 상대팀 골대에 럭비공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승리하는 경기로, 전투체육활동과 유사해 보일 뿐 그 자체가 해상침투훈련은 아니어서, 위 [별표1] 제2-1호 (가)목 및 제2-2호에서 정한 경계ㆍ수색·매복·정찰 등의 직무수행이나 이와 직접 관련된 실기·실습 교육훈련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는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상이를 입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유공자(공상군경) 요건에 해당함을 전제로 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고, 이 사건 처분 중 국가유공자(공상군경) 비해당 결정은 적법하다.
(2) 보훈보상대상자인지 여부(적극)
군인 등으로서 국가의 수호,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상이(질병을 포함한다)를 입고 전역하거나 퇴직한 사람은 보훈보상자법 제2조 제1항 제2호가 정하는 재해부상군경에 해당한다. 따라서 다음의 증거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이 사건 처분 중 보훈보상대상자(재해부상군경) 비해당 결정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① 원고는 2010. 3. 2.경 처음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한 이래 ‘1988. 5. 14.부터 같은 해 5. 28.까지 사이에 충남 태안군 몽산포 해상침투훈련장에서 지역대 대항 집단격구 시합을 하던 중 상악 전치 3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여 국군수도병원에서 6본 브리지 시술을 받았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② 위 격구 시합에서 심판을 본 증인도 이 법정에서 위 사고의 경위를 명확히 기억하여 증언하였는데,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며 모순되거나 비합리적인 부분을 찾을 수 없다.
③ 당시 대대장이었던 중령, 중대장이었던 대위도 사고 장면을 직접 목격하였는데, 이들이 작성한 각 인우보증서에도 위 법정증언과 동일한 취지로 기재되어 있다. 당시 가까운 거리에서 사고 장면을 직접 목격한 이들 주요 간부들이 허위로 진술할 특별한 동기나 이유를 찾기 어렵다.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하더라도, 격구시합 도중 앞니 3개가 절단되는 인상 깊은 사건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일치된 진술과 증언의 신빙성은 이를 쉽게 배척할 수 없다.
5. 결론
위 사건에서는 원고의 치과 진료에 대한 국군수도병원의 의무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으나, “국군수도병원에서 2020. 12. 1. 원고에게 병원부대의 외래진료기록지는 ‘5년 보관 후 파기’라고 되어 있어, 귀하의 외래진료기록은 작성 이후 5년 뒤인 1993년경 파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민원회신을 보낸 바 있고, 국군수도병원이 1999년 서울 등촌동에서 성남시 분당구 율동으로 이전하면서 외래진료기록이 분실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점 등이 고려되었다.
변호사로서 국가유공자 사건, 보훈보상대상자 사건을 직접 수행하기도 하지만, 전공사상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점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사전에 국가유공자 또는 보훈보상대상자로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특별한 희생’이 존재함에도, 제도의 취지를 망각한 채 기계적인 ‘공무기인성’, ‘직접관련성’ 판단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는 최근의 코로나 보건조치로 인하여 ‘특별한 희생’이 존재하는 백신접종 이후의 사상자와 광범위한 영업제한조치에 따른 영업상의 손실 등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특별한 희생에 대한 보상(補償)의 영역’은 ‘인과관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배상(賠償)의 영역’과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실마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