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국민권익위, “군인 2,048명 유가족 찾아 전사·순직 결정 통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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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국민권익위, “군인 2,048명 유가족 찾아 전사·순직 결정 통보해야”

국사모™ 0 921 2021.04.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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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 “군인 2,048명 유가족 찾아 전사·순직 결정 통보해야”

2021. 3. 29.(월)

- 군복무 중 눈감은 가족 기다리는 아픔과 상처 마지막 하나까지 어루만져줘야 -

□ 가족에게 정확한 사망 이유조차 알리지 못한 채 전사·순직한 군인 2,048명의 유가족을 찾아 조속히 전사 또는 순직결정을 통보하라는 권고가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전현희, 이하 국민권익위)는 ‘순직 결정을 해놓고 이를 알려주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라는 민원을 조사하던 중 이와 같은 사례가 더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군인 2,048명의 유가족을 찾아 전사·순직 결정을 통보할 것을 육군에 권고했다.



□ 군복무 중 사망한 군인은 그 원인이 공무와 관련되면 전사 또는 순직, 단순 사망일 경우 병사 또는 변사로 처리된다.
 
그러나 과거 6·25전쟁 등으로 인해 사망구분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전투나 공무 중 사망했어도 단순 변·병사로 처리된 경우가 많았다. 이에 육군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병·변사자 순직 재심의를 실시해 9,756명을 전사 또는 순직으로 처리했다.
 
□ 문제는 이 재심의 결과가 25년이 넘도록 유가족에게 통지되지 않은 사례가 2,048건에 달한다는 점이다.
 
고 정OO 상병도 1996년 재심의를 통해 순직 결정을 받았지만 육군은 2007년까지 이를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정 상병의 순직이 유가족에게 통보된 것은 그의 어머니가 사망한 지 넉 달 후였다. 11년만의 통보로 인해 정 상병의 어머니는 군복무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병사한 아들이 사실 순직했다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육군은 정 상병의 순직을 뒤늦게 통보한 이유에 대해 “정 상병 가족의 주소 불명확, 행정구역 변경 등으로 신속히 통보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의 확인 결과, 정 상병의 군복무 기록에는 유가족의 주소가 정확히 기재돼 있었고 정 상병의 어머니는 2006년 사망 당시까지 아들을 기리며 같은 주소지에서 평생을 거주했다. 지금도 해당 주소지에는 정상병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
 
□ 국민권익위는 육군에 유가족을 찾아 조속히 전사·순직 사실을 통보할 것을 권고하는 한편 유사한 사례들과 관련 문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전사·순직 미통보자 2,048명이라는 숫자에는 6·25참전용사 아들을 가슴에 묻은 독립유공자 어머니부터 고지전 중 전사한 젊은 하사관까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과 아직도 군복무 중 세상을 떠난 가족을 기다리는 2,048개의 아픔과 그리움이 서려있었다. (붙임 사례 참조)
 
□ 또한 국민권익위는 유가족에게 전사·순직이 통지되지 않은 2,048명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위한 전사·순직 통보 등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개선이 필요한 상황임을 확인했다.
 
전사·순직 재분류자 명단을 국가보훈처에 통보했다는 육군과 명단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국가보훈처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와중에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전사·순직군인들이 호국하고도 보훈 받지 못한 세월이 25년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 육군은 지난 2월 25일 위 사례들과 같은 전사·순직 미통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권익위의 권고에 따라 유가족을 다시 찾겠다고 밝혔다.
 
행정관서에 전사·순직자 명부를 비치한 후 행정관서별로 자체적인 유가족 찾기를 실시하면 육군은 그 결과를 접수해 유가족에게 통보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계획은 2000년대의 유가족 찾기 운동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국민권익위 안준호 고충처리국장은 “순직군인의 유가족을 찾는 것은 나라를 위해 젊은 목숨을 바친 이들과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해 주는 일이자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다. 국민권익위는 앞으로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아직 전사·순직 통보를 받지 못한 군인 2,048명의 유가족을 찾고 그들을 예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 독립유공자 어머니가 가슴에 묻은 6·25참전용사 아들 >

고(故) 현종석 이등중사는 6·25전쟁 중 복부에 관통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 그런데 현중사의 군복무 기록(사진 오른쪽)에는 주소가 “남제주 성산읍”이라고만 기재돼 있어 유가족을 찾을 수 없었다.

국민권익위는 현씨 문중 족보 등을 확인해 마침내 그의 유가족을 찾았다. 현중사를 길러 주신 어머니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은 독립유공자 고(故) 탁명숙 선생(사진 왼쪽)이었다.

탁명숙 선생의 큰 손자이자 현중사의 조카인 강태용씨는 “할머니께서는 삼촌을 친 자식처럼 아끼셨다. 할머니께서 생전 군에 갔다 돌아가신 삼촌을 생각하며 늘 마음아파 하시던 모습과 매년 삼촌을 모신 충혼묘지에 함께 참배하러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삼촌이 돌아가신 지 꼬박 70년이 흐른 오늘에야 국민권익위로부터 삼촌이 병사(病死)한 것이 아니라 전사(戰死)하셨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그래도 이것으로 삼촌의 넋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길 바란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치열한 고지전 선봉에 선 박종기 하사, 70년 째 가족에게 닿지 못한 그의 전사 통지

고(故) 박종기 하사는 충청남도 논산군 은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지 위해 학업과 생업을 중단하고 국군에 입대, 하사관 양성교육을 이수한 후 제21사단 제63연대에 배속됐다.

박종기 하사가 강원도 38도선 일대에서 고지쟁탈전을 수행할 무렵 판문점에서는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와 포로송환 방법을 둘러싸고 휴전회담이 전개되고 있었다. 양측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한편, 장차 휴전협정이 체결될 경우 유리한 방어선을 확보할 목적으로 고지쟁탈전에 집중했다.

박종기 하사는 적에 맞서 용전분투하다가 1953년 6월 11일 꽃다운 청춘을 남겨둔 채 고성지구전투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고(故) 박종기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를 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에 그의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전사 통지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들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

※ 내용문의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보훈민원과
과장 이진석 ☏ 044-200-7361
주무관 김보배 ☏ 044-200-7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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