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집안식구들의 모임이 있었다. 평안북도 고향에 다녀오신 작은아버지와 어머니 막내동생 식구들과 만났다.
"이렇게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구나" 하시고 이번에 이북에 있는 직물도매상인 조합과 연결이 되어 삼촌의 가게 물건이 곧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의류로 가공되어 제3국으로 수출하는 계약이 성사될 것이라는 기쁜소식을 들고 오셨다. 동생도 평남북 전역을 돌면서 내가 부탁한 자료와 서적들을 모아서 내개 가져와 정말로 고마웠다.
삼각지로 가는 전철안에서 신문을 펴들어 읽다 보니 신문지상에는 오늘 오후 2시부터 남북에 생존하는 남북전쟁 참전자 본인과 유가족들의 모임과 학술세미나가 있다고 한다. 그동안 여러차례 모임이 있었으나 이렇게 참전군인들이 직접 모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 것 같다. 비록 총뿌리를 겨누고 실제 방아쇠를 당기고 싸웠던 동족이지만 역사적인 비극과 원한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결과가 나타나길 바라면서 신문을 접고 삼각지 전철역에 내려 청사에 도착한다.
사실 요즘에는 6.25 또는 월남참전 유공자가 점점 줄고 있지만 민주화와 통일분야와 우리나라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린 유공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사무실에 도착 하자마자 내가 소속한 민원기동팀은 출동준비를 한다. 모든 장비를 점검하고 수송체계를 확인한다.
이윽고 전화벨이 울렸다. 70세가 넘으신 월남참전 상이용사의 미망인의 전화이다. 자녀가 사업을 실패하고 자신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서 당장 있을 곳이 없어 임시로 지하실 방에 있는데 누수로 인하여 거주하기가 불편하다는 내용의 전화이다. 우리는 즉시 사안을 판단하고 2명의 직원을 현장 방문토록 한다.
이와 같이 거동이 불편한 유족이나 상이군경 또는상이자분들은 내청이 불가능하므로 우리가 직접 방문하여 민원인의 고충을 직접 경청하고 생활실태와 주거실태를 직접 면밀하게 조사하여 민원인 개개인에 에 맞추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관할 기초자치단체와 협조하려는 것이다.
보훈행정은 자치단체와 밀접하고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갖으며 과거처럼 민원인이 찾아와야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달려가 고충을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바뀐지 이미 9년이 되었다.
그동안 국가보훈처는 시대를 앞서가는 정책과 국가유공자와 가족들의 모범적인 생활들이 언론을 통하여 홍보되어 각 공공기관과 사회단체 그리고 기업들의 격려와 지원을 아끼고 있지 않다.
할머니는 원래 독립유공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이웃동네 총각에게 시집을 갔으나 남편이 월남전에 갔다가 부상을 당하여 젊어서 남편의 장애를 간호하고 집안일이나 집밖에 일까지 대신 처리하고 두자녀를 잘키웠으나 남편이 죽고 자녀들도 따로 떨어져 살면서 사업에 실패하고 부양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어 한스럽고 현재의 고통과 외로움을 하소연한다.
우리는 이웃주민과 통·반장에게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지금 당장 주거가 불안하므로 임시주택을 대여해주는 방법을 찾아 도와드린다. 할머니는 현장에 직접나와 수고한 직원들과 이웃주민들을 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그녀의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슴 뿌뜻해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몰래 미소를 지으며 또 다른 민원인을 위하여 차에 시동을 건다.
1999년에 4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추신 )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우리국민의 성숙된 지혜로 세계의 문화의 중심지가 될
시금석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