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30년을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아무 탈 없이 살았 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걱정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이번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경을 쓰며 살았는데, 애 쓴 보람도 없이 집안일이 꼬인다.
1987년 5월 3일은 우리 가정에는 좋지 않은 날이다.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지옥의 사자가 찾아오니, 하늘도 땅도 보이지 않고 가정의 기둥이 흔들린다.
동생 승임이는 자기보다 큰 매부를 업고 성환이 오빠가 운전하 는 승용차를 타고, 남편은 의식을 잃은 채 내 무릎을 베고, 동내 의원인 김 내과를 거쳐 강남 성모병원에서 뇌 사진을 찍고 응급 조치를 한 후, 구의동 방지거병원에서 오후 2시에 수술 준비를 끝내고 의사를 기다리며 오후 10시에 수술을 시작하였으니 그 시간이 너무도 길다.
수술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새우니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정현래 대령(예비역)이 문병을 왔다가 내 모습을 보고, 억지로 자기 집으로 끌고 가서 미역국에 밥 한 공기를 먹이고 눈을 부치 게 하니 정신이 맑아진다.
새벽에 전 대령(예비역)의 승용차로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으며, 수술을 끝낸 남편은 의식 없이 잠들어 있고,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아담”과 “이부”의 낙원동산이 아니더라도 아름답고 즐거운 삶의 동산에서, 우리는 평범하지만 남에게는 폐를 끼치지 않는 깨끗한 삶을 살았는데, 잔인한 지옥의 사자가 우리 가정을 짓밟는다.
모든 일은 운명이라고는 하지만 티 없이 맑게만 흐르는 우리 가정에 저승의 사자는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킨다.
곱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져주어 내 가슴은 쓰리고 아프다. 머지않아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광풍은 미풍으로 바뀌며 평화로운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이유 없이 억울하고 괴로울 뿐이다.
모든 것이 숙명이고 넘어야 할 운명이라면 조용히 결과나 지켜보자. 봄은 만물이 소생하고 희망의 싹이 돋아나는 계절이라고 하는 데, 우리 가정에 찾아온 5월은 엄동설한의 추위를 몰고 왔다.
우리는 종교를 가진 신자는 아니지만, 정해진 사회규범과 공포된 법률을 지키며 살아가는 가정을, 보살펴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려보자.
돌아오는 일요일엔 젊음이 파도치는 보리밭을 찾기로 했는데,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니 어느덧 5월이 간다.
화단에 핀 장미꽃을 남편과 함께 즐기면 좋으련만, 세월은 희망과는 달리 덧없이 흐른다. 장미꽃이 지기 전에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길 기도한다.
가난하여도 우리는 생활의 즐거움도 알고 마음 편히 살았는데. 이제는 인생의 뒤안길에서 불안한 여생을 살아가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