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3월, 미 육군의 북태평양사령관이던 “아이젠하워” 원수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같은 해 6월 1일 군복을 벗으며, 국회 상, 하 양원합동회의 석상에서,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군복을 벗는다.
같은 해 11월까지 “아이젠하워” 원수가 선거 유세를 하는데, 상호는 생업에 종사하며 미국의 대통령 선거 소식을 듣고 이름풀이를 하며 “아이젠하워” 원수의 이름이, “아, 이젠 하위(和解)이니 한국 전쟁이 끝나겠다”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아이젠하워”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랐다.
오늘은 2001년 6월 6일로 제46회 현충일이다. 일제(日帝) 식민지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애국지사, 창군(創軍) 이래 6.25 사변을 거치며 국토 방위전선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했거나 순직(殉職) 또는 병사한 장병이나 공무원, 종군 노무자와 애국인사 등의 충렬을 기리고, 유족을 보살피며 영령(英靈)을 위로하는 날이다.
6.25 사변이 발발한 지도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쟁을 하거나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는 군인의 인기가 대단해서, 여학생이 결혼 상대자로 선호하는 직업에 군인이 수위를 차지했으나, 세월이 흐르고 나라가 평온하니, 군인이란 단어는 죽음이란 그림자에 가려서, 여학생이 결혼 상대자로 선호한다는 단어는 그림자를 감춘다.
오늘 아침 배달된 서울경제신문 1면엔 어제 국립묘지에 잠들어있는 전사자 비석을 단장하며, 여학생들이 고인의 명복을 비는 사진이 크게 실려있다.
어제(2001. 6. 5) 배달된 동아일보 1면엔 4일부터 5일까지 4척의 북한 선박이 영해(領海)를 침범했으나, 해경과 해군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커다랗게 게재되었다.
작년(2000)에 상호의 임관(1953. 9. 19) 47주년을 기념하는 동기생 모임이 용산역 앞에 있는 ‘용사의 집’에서 있었다.
몇몇 동기생이 월남전에서 싸웠던 전투경험을 말하며, 집요하던 월맹군의 공격을 말하고 있을 때다.
한 동기생이 “나는 월남으로 가라고 해서 제대를 했지, 죽을 줄 알면서 왜 전쟁터로 가느냐”라고 살아 있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월남전에 참전한 동기생은 고개를 숙인다.
오늘의 정서에는 맞는 말이지만, 나라를 위해선 죽움을 택하는 것이 영광스럽다고 배워온 상호 정서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참전을 거부했다는 말은 회식 석상에서 공개적으론 하지 못할 말인데, 시대가 변하니 참전을 거부한 사람은 당당하고, 나라의 명령으로 월남의 전쟁터를 다녀온 사람은 고개를 숙이며 위축되어 있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과 생각이 바뀌니 애국의 개념도 달라진다.
전에는 10만원도 뇌물(賂物)이오, 받아서는 안 되는 파렴치 (破廉恥)한 행동인 데, 지금은 백억, 이백억은 정치자금이오, 뇌물을 받는 행위가 높은 사람이 청탁을 들어주고 받는 반대급부로서 당연한 행동이오, 뇌물을 못 받고 축재를 못하는 사람은 직위가 낮고, 세상을 적응하며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게이트(gate)란 영어 단어를 배우지 못한 구세대들에겐 축재 (蓄財)대신 명예(名譽)를 먹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주월사 전투정보과 책상 위에서 “레둑토(월맹군 총사령관)의 전술을 연구하고, 다음 행동을 예측해야 했던 상호에겐, 당사자가 친선 목적으로 서울에 왔어도, 아직도 월맹군 총사령관인데, 30년의 세월이 흐르니 세상은 그가 월맹군 총사령관으로 전쟁 영웅이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평화의 사도(使徒)로서 곱게만 비쳐지니 안타까운 노릇이며,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자가 됐다는 사실이 상호에겐 믿어지지 않는다.
월맹군을 지휘하던 총사령관(레둑토)이 서울에 와서, 한국군 총사령관이던 노(老) 장군을 만나 한국군의 용감성을 치하하고, 한국군 총사령관이던 노장군은, 1968년 2월의 구정 공세 때, 월맹군의 집요하던 공세를 치하한다.
옛날에 있었던 일은 그 시대를 사는 국민이 나라의 요구와 전개되는 상황에 따른 것이오, 오늘 전개되는 상황은 현재를 사는 국민이 취하는 행동이오 주장이며, 영구불변의 상황은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와 해방 후의 혼란스럽던 사회, 민족 지도자의 연이은 암살과 좌우익의 이념 대립, 38선의 비극을 기억하고 6.25 사변과 1.4후퇴, 월남전을 겪은 세대는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해도 과거를 잊지 못한다. 과거는 역사에 맡기고, 현재는 젊은이에게 맡기며, 과거의 주역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의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볼 일이다.
“아이젠하어” 장군은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고 말 했지만, 상호는 “노병은 사라지기 전에 하고 싶은 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