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하는 데는 군인을 잘 먹이고 잘 입히며, 소모되는 병참 물자를 끊임없이 보급하는 것이 전투에 승리하는 원동력이오, 중요한 요소다.
군 당국에선 병참 물자의 하역 지점과 저장 위치를 신중히 고려하는 까닭도, 필요할 때 적기에 공급하기 위한 사전 포석 이다.
병참물자를 실은 수송선이 부산항에 도착하면, 임시로 저장 관리 하는 부대가 있고, 전투지역 가까운 곳에 장기적으로 저장하는 시설 과 관리하는 부대가 따로 있다.
홍천읍내 동쪽으로 4km 떨어진 고개 넘어 금촌리 산기슭에 흙 벽 돌로 된 포탄의 저장고가 산재해 있다.
1966년부터 8월까지 6개월간을 상호 주대가 탄약고 경비를 책임 진다.
행정은 부대에서 하고 경비 병력만이 현장으로 파견되어, 수행 하는 업무는 경비만으로 단조롭다. 날씨가 쌀쌀한 늦은 봄 오후에 탄약고 순찰을 마치고 중대본부로 돌아왔을 때다.
순찰이 주 임무 이니 중대본부래야 중대장 혼자만이 기거하는 흙벽돌 임시 막사다.
벽에 걸린 TS-10(경비초소끼리 통화하도록 연결되어 있는 바테리 없는 야전용 송수신기)에서 다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참모님이 애지중지하는 포인터입니다.
탄약고를 순찰할 때 개가 참모님을 따라다녀서 지형에 익숙했던 모양입니다.
갈만 한 곳은 다 찾아보았지만 찾지를 못해서 혹시나 하고 탄약고까지 왔습니다” 하는 목소리다.
“김 하사, 우리 애들도 0개와 사냥개를 구별할 줄 아는 식견은 가지고 있어, 사냥개를 잡아먹을 정도의 무식꾼은 아니니 안심하고 돌아가시오”하는 목소리다.
사단사령부 김 하사와 화기 소대장 김 (金鍾坤) 소위의 대화다.
전날 아침이다.
탄약고 막사를 따라 순찰을 하는데, 길가에 세워진 마지막 막사에 이르렀을 때다.
산과 산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있고 골짜기 끝 산자락을 따라 탄약고가 있다.
탄약고는 운반과 저장을 고려해서 신작로 가에 있으며, 탄약고 근처는 사람과 차량의 통행도 잦다.
탄약고 전방에 아스팔트 도로가 있으니, 사고를 대비해서 보초의 경계심을 강화하고, 긴장감을 고조 시키기 위해서 탄약고는 병기중대의 순찰코스에 포함되고, 경비중대 의 관심도도 높으며, 보초는 민간인과 접촉도 잦다.
근무 중 이상이 없다는 보초의 보고를 받고 탄약고를 보니, 흰색 포인터 한 마리가 옆에 있는 소나무에 매어져 있다.
상호가 어찌된 개냐고 물으니 포인터가 탄약고 근처를 배회하고 있어 쫓아도 가지 않아, 소나무에 매어두고 주인이 찾아오길 기다린다는 보초의 대답 이다.
탄약고를 한 바퀴 돌아도 이상이 없으니 상호는 안심하고 중대 본부로 돌아온다. 평소에 장병의 식사는 1식3찬(1食3饌)이라고 해서, 밥 한 그릇에 반찬 3가지 식사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중대 취사장에서는 급양 대에서 추진되는 식자재(食資財)로 반찬 3가지 이상을 만들자니, 고 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매일같이 콩나물국과 무채, 깍두기만 나오던 부식이 돼지고기 국이 나왔다.
식사를 가져온 취사병에게, 어찌 된 고기 국이냐고 물으니 급양대에서 약간의 돼지고기가 나와서 콩나물국 대신 돼지고기로 국을 끓였다고 한다.
1식 3찬의 규정에 따라 배달된 콩나물과 배추, 무를 가지고 급식 규정에 맞추고, 장병의 구미를 돋우자니 취사병의 고민이 많은 데, 적절한 시기에 급양대에서 쉽게 고민을 풀어줬구나 하고 상호 마음 은 흐뭇하다.
사단 병기참모부 김 하사와 싸우던 김 소위는 40년이 흐른 지금, 서울시내 사립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고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