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모택동의 16자전법

[25]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모택동의 16자전법

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25]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모택동의 16자전법

0 5,617 2003.08.2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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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모택동의 16자전법

현역군인
모택동의 16자 전법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쟁에서 이기려면 짤막한 경구 (警句)가 있 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知彼知己 百戰百勝) 이란 손자병법은 전쟁에 관한 병법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인사에 관한 술법을 논한 13권에 달하는 술서(術書)로, 저자는 중국의 춘추시대(기원 전 770~403)에 위(魏)나 라 의 손무(孫武)가 지었다는 설과 그의 자손 손빈(孫臏)이 지었다는 설, 혹은 위 무제(魏武帝) 조조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누가 지었던 저자는 차치하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라는 전쟁 술어는 전쟁 뿐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도 자주 인용된 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나라마다 전술을 연구하고, 독자적인 전술을 개발하고 있으나, 손자병법만치는 유명하지 않지만, 모택동의 16자 전법은 동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모택동의 16자 전법은 성동격서(聲動擊西), 적진아요(敵陣我擾), 적퇴아진(敵退我進), 적진아퇴(敵進我退)라는 16자의 한자를 조립 한 전법으로, 전면전을 피하고 게릴라전에 응용되는 전술로 너무도 유명하다.

이 전법은 중국의 국공(國共) 내전에도 적용하고 월남전 에서 ‘베트콩’이 사용한 전술이다.

한국 전쟁 때는 총을 잡은 공격 부대 뒤에는, 꽹과리와 피리, 북을 들고 뒤따르는 비무장 부대가 있어서, 적과 대치해서 밤에 꽹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면, 우리 병사는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다는 두려움과 고향에서의 두레농사를 생각해서 사기가 떨어진다.

무기가 모자라 그러기도 했겠지만, 모택동의 16자 전법을 생각하니, 비무장 부대의 전선 투입에 수긍이 간다.

전북대학교 논산분교에 등록하고 면학에 힘쓰고 있는데, 1962년 5월, 6.25 사변 11주년을 맞아 장병 문예작품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육군신문에 실렸다.

전방에서 소대장으로 있을 때, 전령으로 데리고 있던 김 하사가 자랑하던 무용담이 생각나서 그 내용을 다듬어 “대 결”이란 제목으로 소설 분야에 응모허여 당선이 됐다.

그 내용을 적으면 다음과 같다.

“자냐”하고 상근이 고개를 돌리며 어둠 속에 탄약통을 옆에 놓고 총상(銃床)에 머리를 묻고 있는 부사수 영재(榮在)에게 속삭인다.

영재는 “에, 안 잡니다”하고 대답하며 총상에서 부스스 상체를 일으 킨다.

총상 에 놓여있는 기관총 밑엔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영재 철모 가 뒹굴고 있다.

삐걱하고 상근이 깔고 앉은 건빵 상자에서 소리가 난다. “자지 마, 곧 교대 병력이 올 거야”라고 말하며 상근이도 감기는 눈을 어지로 부릅뜨고 영재에게 속삭인다.

상근인 동굴 안에서 총구 를 통해 바깥세상을 내다본다.

4월의 밝아오는 햇살은 영사막에 비 친 영상(映像)과 같이 비탈진 황토 흙 언덕길을 눈부시게 비치고 있다.

강원도 인제 북방 주저항선 상에 있는 이 고지를 장병은 지도 에 이름이 없으니, 등고선(等高線)에 나타난 높이대로 “812 고지” 혹은 “돌 고지”라고 부른다.

“돌 고지”란 고지 정상에 커다란 바위가 박혔다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고지 뒤엔 건봉산(乾鳳山), 향로봉(香爐峰), 매봉산을 있는 산봉 우리가 이어지고, 외쪽에는 무산(巫山)이 높이 솟아있다.

“돌 고지” 는 산 높이는 낮으나, 무산과 건봉산 사이에서 앞으로 뻗어있는 산 봉우리로서, 아군에겐 방어하는 데 천혜의 요충지다.

오른쪽 해안가는 간성, 속초, 양양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남쪽으로 뻗어있고, 분지와 평야엔 사람이 모여사는 부락과 도시가 발달돼 있다.

1953년 봄이다.

1951년 7월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은 서로가 휴전의 필요성은 인정 하면서, 휴전이 되면 현 전투 지역이 휴전선이 될 것이라는 가정 하 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뺏고 뺏기는 전투가 되풀이 된다.

10억의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은, 인적 희생을 중요시 하지 않아 모택동의 16자 전법도 “적퇴아진(敵退我進)”과 적진아요 (敵陣我 擾)의 전술을 응용한, 인해전술(人海戰術)과 소요전술(騷擾戰術)은 아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민간인을 공포에 떨게 한다.

“쿵...,쿵”하고 후방에서 들려오는 포격 소리도 이틀 전만 해도 아군의 연대 지휘소 자리에서 들려오는 포격 소리다.

“분대장님, 왜 이렇게 조용합니까. 중대 방어진지와 관측소가 저희들 수중에 있으니, 이 조그마한 진지는 안중에 없지 안 습니까” 하고 영재는 불안한 표정으로 상근이 눈치를 살핀다.

상근이 바지 주머니에서 건빵 한 개를 꺼내서 입안에 넣는다.

부서진 건빵은 입안에서 침과 섞여 한 덩어리로 뭉치지 못하고, 침 따로, 건빵 따로 겉돌고 있다.

중공군은 동굴 진지 속에서 저항하고 있는 한국군이, 식량과 탄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상근인 건빵이 반 봉지나 남았으니, 아끼고 안 먹으면 하루는 더 버티겠다고 생각한다.

“분대장님, 건빵이 떨어지기 전에 무슨 수라도 났으면 좋겠습 니다. 우리 뛰어 나갈까요”하고 영재가 상근이 눈치를 살핀다.

“안 돼, 발밑엔 중공군이 우글거리고 있어”하고 상근인 성난 목소리로 밖으로 뛰어나가려는 영재를 못 나가게 막는다.

하사 계급장을 단 상근이 V자 하나의 일등병 계급장을 단 영재와 전쟁 터를 누빈 지도 3개월이 넘는다.

 “이거어, 죽든 살든 무슨 수라도 나야지...,”라고 중얼거리며 영재는 팔을 뻣고 기지개를 편다.

“그러니 적이 오나 잘 보란 말이다.

관측소가 떨어진 지 24시간이 지났으니, 아군이던 중공군이던 다음 행동으로 옮길 시간이 됐어” 라고 말하며, 상근이 후방으로 철수한 아군이나, 아군 방어진지를 점령한 중공군이나 다음 행동으로 옮길 시간이 됐다고 생각한다.       

“네..., 오늘”하고 영재는 상근이 한 말을 되씹는다.         

“그래...,이제부턴 동굴 진지 안에서 굶어 죽던지, 진지 밖으로 나가 올라오는 중공군과 맞서 치고받는 백병전을 버리던 지, 둘 중의 하나 만이 남아있어”하고, 상근인 남의 말 하듯 영재 말을 가볍게 받아넘 긴다.

“바시락”하고 건빵 한 개를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씹으며, 상근인 중공군과 격전을 벌려야 할 시간도 점점 가까이 닥아 온다고 생각 한 다.

“김 하사..., 김 하사” 이상 없나 김 하사“하고 소대장(金元中 少 尉)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어둠 속을 기어와서 상근이 어깨를 두드리며 묻는다.

“네 이상 없습니다”하고 상근이도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사람 이 이상 없다는 것인 지, 상황이 이상 없다는 것인 지 확실치는 않으 나 아마도 상근이 대답은 둘 다 포함되었을 것이다.

“수고한다. 진지를 점령한 중공군이 다음 행동으로 옮길 시간이 되었으니 경계를 철저히 하라, 이젠 건빵도 마지막이다”하고 소대 장은 작업복 아래 주머니에서 건빵 한 봉지를 꺼내서 상근이와 영재 앞으로 내민다.

“건빵은 아직 반 봉지 남았는데요”라고 하며, 사근인 사대장이 주는 건빵을 받기가 민망한 듯 손을 내밀지 못하고 주저주저 한다.

“아껴 먹어라, 오늘은 우리 중대의 역습이 있을 법도 하다”라고 말하며 소대장은 오른쪽 교통호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동굴 진지 안엔 소대장 김 소위를 비롯해서 상근이와 같이 전초 진지에서 전투를 하던 전초진지 분대원 10여 명이 지하 동굴진지로 철수해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다.

중공군은 간밤에 인접 3중대와의 전투지경선(戰鬪地境線 )을 뚫고 상호네 중대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퇴로를 차단당한 전초 분대가 지하 동굴진지로 철수한 아군의 병력은 무시한 채, 중공군은 아군의 역습에 대한 재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전초분대는 중대와의 연락도 끊기고, 곧 역습한다고 진지를 사수 하라던 중대장 무선 지시도 감감하다.

10여 명의 분대원은 동굴진지 안에서 지난 24시간을 불안 속에 버티고 있다.

날이 밝자 상근인 교대 병력이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스르르 눈을 감는다. 영재에게 옆구리를 찔린 상근이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뜬다.

“저것보세요”라고 영재가 숨을 죽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중공군 한 명이, 총도 무기도 안 가지고 뒷짐을 찐 채 허리를 굽혀 총구(銃口) 앞에서 동굴 진지 앞에서 안을 살피고 있다.

무기를 안 가졌으니, 공격조가 아닌 요란조(擾亂組)라고 생각한다.

“왔구나..., 왔어, 이 일병 빨리 소대장한테 가서 중공군이 나타 났다고 보고하고 와”하고 낮은 목소리로 상근이 속삭임을 듣고, 영재가 뒷걸음으로 왼쪽 교통호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중공군은 물이 빠져서 하얗게 보이는 아래위 국방색 누비솜옷을 입고 있다.

상근인 이제 마지막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생각하자, 가슴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쿵...,쿵”하고 울린다.

상근인 홈이 파인 배수로에 엎드려 바깥을 내다보며, 불을 뿜는 기관총을 상상한다.

“저 되놈을 총알 한 방에 날려버려”라고 중얼거리며 중공군을 쓰러트리는 데엔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상근인 멀리서 다가오는 인민군이나 중공군을 향해선 방아쇠를 당겨보았으나, 이렇게 가까이서 중공군을 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공군은 동굴 앞에서 안을 살피다가 느린 걸음으로 오던 길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간다.

상근이 중공군이라면 동굴진지 안에서 농성을 하는 한국군을 발견하고도, 저렇게 뒷짐을 찌고 태연하게 고지를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정을 한다.

상근인 방아쇠에서 손을 떼며 의지하던 흉상(胸床)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후유우”하고 깊게 마셨던 숨을 내쉰다.

소대장 김 소위가 오른쪽 교통호를 따라 상호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갔습니다, 동굴진지 안을 살피던 중공군은 돌아갔습니 다”라고 영재가 허리를 굽히며 다가오는 소대장에게 보고한다.

“응, 알았다. 적에게 발견되기 전에는 이쪽에서 총을 쏘진 말아라” 하고 소대장은 필요한 지시만을 내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총구 밖에서 그림자 하나가 얼른거린다. “따라락..., 따라락” 하고 옆 진지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들려오며, 바른손을 들며 높이 들어 동굴 진지 안으로 방망이 수류탄을 던지려던 중공군이 뒤로 몸을 제키더니, “털썩”하고 나뭇단 쓰러지듯 둔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진다.

“따라락...,따라락” 하고 상근이 기관총도 불을 뿜는다. 밖에서 “쾅 쾅..., 우루루” 하고 흙덩이 쏟아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김 하사, 김 하사, 이상 없나 김 하사” 하는 소대장의 외침이 어둔 교통호 안쪽에서 들려온다.

“네 둘 다 이상 없습니다”라고 상근이도 캄캄한 교통호 안쪽에 대고 외친다.

“알았다, 아군의 진내사격(陣內射擊)이다.

포탄의 공중 폭발이다. 정신 바짝 차려라, 곧 기쁜 소식이 있을 것이다” 하는 소대장의 들뜬 외침이 교통호 안쪽에서 들려온다.

“기쁜 소식, 아군의 진내사격” 하던 소대장의 외침이 상근이 귓가 에서 되살아나며, 가물가물하고 멀어지는 의식 속에, 밖에서 들려오 는 포탄 터지는 소리가 “쾅쾅...,째앵”하고 어린이 달래는 자장가 처 럼 상근이 귓가에 정답게 들리며 스르르 눈이 감긴다.
                 
* 1961년 7월 14일자 육군신문에 게재된 발표문에서, 심사를 맡았던 평론가 이봉구(李鳳九) 선생은 심사평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치열한 전투를 조금도 과장이 없이 본 그대로 느낀 그대로 담담하게 그려서, 이 소설은 전투에서 피어나는 적나라한 인간상을 높고 맑은 경치로 그려진 것으로, 성공한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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