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수용된 장정은 오전엔 교실 바닥에 둥글게 모여앉아 방위군 장교가 들려주는 시사 해설이나 오락회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연병장(운동장)에 나가 제식훈련을 한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오락회 때면, 한참 유행하던 현인의 ‘신라의 달밤’을 “아. 아...,아”하고 흉내를 내고, ‘고향무정’을 멋지게 부르던 용희준(龍熙俊)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경북 문경에서 있었던 일이다.
혼잡한 국도를 피해 험악한 새재(鳥嶺) 산길을 넘어 산 밑 초가집에 도착했는데, 집안의 공간은 먼저 온 피난민이 모두 차지하고, 공간이 없어 추녀 밑에 쪼그리고 앉아 겨울밤을 새운 상호는, 새벽 동이 트자마자 걷는 것이 추위를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되어, 옆에 앉아있는 길동무를 재촉하여 잡아 일으키는 순간 쪼그리고 앉았던 길동무는 옆으로 눕는다. 고성농업학교 정문 기둥엔 학교 간판과 나란히 국민방위군 제6교육대란 새로운 간판이 내걸린다.
소금물에 굴려 빚은 주먹밥 한 덩이와 국으로 나오는 끌인 바닷물로 끼니를 때우고, 트럭에 실려 전방으로 가서 현역으로 편입되어 공산군과 싸울 날을 기다린다.
학교 숙직실에선 노점상이 들어와 떡과 담배(長壽煙)를 파는데, 그것도 돈 있는 사람의 몫이오, 돈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장사는 되지 않는다. 숙직실 앞에서는 피난민이 몸에 지녔던 것을 돈과 바꾸려고 북적대는 데, 돈 되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교육대 일과는 아침 9시부터 시작되는데, 오전에는 교실에 모여앉아 중대장의 시사해설을 듣거나 오락화를 하고, 오후에는 연병장에 나가 다섯 시까지 제식훈련을 한다.
학교 숙직실에선 노점상이 들어와 떡과 담배(長壽煙)를 파는데, 그것도 돈 있는 사람의 몫이오, 돈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장사는 되지 않는다. 숙직실 앞에서는 피난민이 몸에 지녔던 것을 돈과 바꾸려고 북적대는 데, 돈 되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6시에 나오는 주먹밥 한 덩이로 저녁을 때우면 오후 10시까지의 자유시간에는, 숙직실의 임시 매점이나 숙직실 앞에 형성된 물물교환 장소를 기웃거리다 운동장이나 공터를 헤매며, 씀바귀나 나생이를 뜯어서 날(生)로 먹으며 빈창자를 채운다.
오후 10시에 잠자리에 들어서 잠을 청하면 배가 고파 쉽게 잠들지 못하고 엎드려 잠을 청한다.
모두의 속삭임이 조용해지면 상호도 선잠을 잔다. 꿈속을 오락까락 하다가 등이 가려워 잠에서 깨어나면 주위가 고요하다.
살며시 일어나 교실 입구로 다가가면 불침번이 졸고 있다.
교실 문을 나가서 복도 끝으로 나가면 5m 정도의 통로 끝에 직원 변소가 있다.
시계가 없으니 시간은 모르지만, 북두칠성이 자리를 틀었으니 새벽이 가깝다. 등이 가려워 잠에서 깨었으니, 속내의를 벗어서 뒤집어본다.
집에서는 등이 군실거리면 내의를 벗어서, 간혹 눈에 띄는 이(虱)를 잡아서 손톱으로 죽이는 데, 단체 생활을 하는 고성 농업학교 교실에서는 재봉선 상에 이가 줄지어 매달려있으니, 손톱으로 죽일 수는 없다.
변소로 가지 않고 통로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내의를 벗어서 “훌훌” 털면 이가 하얗게 바닥 위로 쏟아진다.
집에서 보는 이는 덩치 작은 사람 몸의 기생충인데, 고성 농업학교 교실에서 보는 이는, 맑고도 통통한 보리쌀 같은 몸집의 사람 모에 기생하는곤충이다.
상호는 수중에 돈이 있던 관계로 2,3일에 한 번씩 떡과 담배를 사서 주위 사람과 나누어 먹었더니 모두가 좋아하며, 영어와 일어가 유창하고 한문을 많이 안다고 해서, “어린 박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중대 마스코트로 여겨지며, 대원으로부터 귀여움을 받는다.
오후 일과가 끝나면 운동장이나 공터를 찾아, 씀바귀나 질경이를 뜯어 날로 먹으며 비어있는 창자를 채운다.
봉산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한(韓相薰) 선생은 운동장이나 공터를 헤매며 나물을 뜯어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행동이, “위신이 깍기고, 체통이 떨어지는 행동”이라고 하며,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라고 교실에 남아 벽에 기대서 졸다가, 기운이 없다고 마루 바닥에 눕더니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
중대 본부에서 자리에 누워있는 한 선생을 치우라고 막걸리 한 동이와 광목 한 필이 나왔는데, 사역을 자청하는 대원이 10명은 넘는다.
아침이면 밤사이 유명(幽命)을 달리한 대원이 가마니에 말려 교실 밖으로 나가는 데, 저녁이면 위병소 길 건너 기와집 사랑방에선 oo청년단 본부의 훈련부장을 지냈다는 교육대장이 작업복을 입은 채로, 젊은 소실(술집 작부) 손을 잡고, 유성기(留聲機)에서 흘러나오는 맘보 가락에 맞춰 온돌방을 빙글빙글 돈다.
위병 근무를 하던 중년의 방위군 대원은 두절된 가족의 안부와 소식를 걱정하며 유성기 소리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불안해한다.
전선에선 인민군에 추가해서 중공군이 참전해서 국군과 UN군이 남쪽으로 밀리니,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요, 나이 지긋한 사람은 나라의 운명과 더불어 가족의 소식을 근심하고, 나이 어린 젊은이는 나라의 장래를 근심한다.
상호는 영어와 일어가 유창하고 한문을 많이 안다고 해서, “어린 박사”라는 애칭으로 중대 마스코트로 여겨지며 대원으로부터 귀여움을 받는다. 항간에는 ‘현인’이 사회상을 노래한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 부두에...,”하는 ‘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래가 유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