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노병의 독백 - 6.25 사변-공산당은 우익 인사를 학살한다

공산당은 우익 인사를 학살 한다

저녁 상머리에서 상호 여동생이 말하기를, “모를 심던 인호(金仁鎬)가 등 넘어 역말의 동수(李東洙)에게 끌려갔는데, 저녁때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한다.

동수 동생 성수(李星洙)는 6.25 사변이 나기 전에 공산당을 지지하는 전단을 야간에 집집마다 뿌린 적이 있는 데, 그 뒤로 양복 입은 청년 2명이 동네로 들어와서 인호에게 성수네 집을 묻기에, “등 넘어 역말이다”라고 가리켜 주었더니, 청년들은 역말로 넘어가서 성수를 데리고 가더니, 오늘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자유당 시대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사변이 발발하니 인호가 성수네 집을 묻는 청년에게 “등 넘어 역말이다”라고, 가리켜 준 것이 죄가 된다.

세상이 바뀌고 체제가 달라지니, 그동안 당했던 “빨갱이”라는 설음을 갚으려는 듯 , 공산당 젊은이는 등 넘어 역말에서 상호네 동네까지 와서 유감 있는 사람을 찾는 데, 공산당 젊은이가 없는 상호 동네에선 설음이 더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이리 죽고 저리 죽고 젊은이가 죽어나간다.

국군과 경찰이 남쪽으로 내려가고, 인민군이 부락을 지나가니 자유당 시절에 부락 일을 보던 사람은 반동으로 몰리며 물러가고, 공산당 사람이 자리를 차지한다.

부락 이장은 인민위원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면사무소는 면 인민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며, 지서(支署)도 분주소(分駐所)로 이름을 바꾼다.

자위대란 조직이 새로 생기며, 경찰관과 공무원, 그 가족을 감시한다.

이웃집 복순(金福順)인 여성 동맹에 가입하고 면 인민위원회로 출근해서 여러 부락을 돌며 김일성 노래와 빨찌산 노래를 부르는 가창대(歌唱隊) 요원이 된다.

여성으로서 동네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를 나왔으니, 6.25 사변이 나기 전엔 똑똑한 재질이 안으로 숨겨져 있었었으나, 사변이 나고 세상이 바뀌니 안으로 숨겨져 있던 재질이 밖으로 나왔다.

돈이 없어 남의 집 머슴 살던 일꾼들도 세상이 바뀌니 자기네 세상이 왔다고 재능을 뽐내며 능력을 과시한다.

땅 많은 사람은 숨소리를 죽이고, 땅 없는 사람은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목소리를 높이며 거리를 활보한다.

예산군과 당진군의 군계(郡界)에 위치한 상호네 도네에는 배웠다는 인물이 없어, 지서(支署) 순경이나 면서기 하나 없더니, 사변이 나고 세상의 체제가 변해도, 인민 위언장이나 자위대장 할 사람이 없다.

6. 25 사변

동네 사람의 강권(强權)으로, 자유당 시절에 이장(里長)을 하던 홍순범(洪淳範)이 인민위원장으로 이름만 바꾸고 자위대장을 겸한다.

이웃 동네에는 배운 사람과 사상가(共産黨員)가  많아서 서로가 비어있는 요직을 차지하겠다고 동네가 시끄러운 데, 상호네 동네는 인물이 없어 조용하다.

저녁이면 “댕...,댕...,댕”하고 징을 치며 동네 사람을 ‘돌다리’ 느티나무 밑으로 모이게 하고, 붉은 사상 교육을 한다고 면 이민위원(공산당원)이 나와서 게거품을 물고 김일성과 공산당원의 빨치산 활동을 선전한다.

자수하면 과거의 죄를 묻지 않는다는 공산당 말을 믿고, 피난 못 간 궁평리(宮坪里)의 순구(黃淳九)가 봉산면 지서 순경을 지냈다고 자수를 하고, 마교리(馬橋里)의 필헌(宋必憲)이 경찰 후원회장을 지냈다고 자수를 한다.

땅이 많다고 동네 사람의 부러움을 받던 상연(朴商連)이 죄도 없으면서 불안해한다.

1950년 9월 24일 아침이다. 동네 사람은 내일, 모래면 추석이라고 지난날의 풍요하던 추석을 잊지 않고 있는 데, 면 위원회(共産黨)에선 조국의 통일을 축하하고, 영용(英勇)한 인민군을 환영한다는 농민 궐기대회가 봉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다고 인민 동원령이 떨어진다.

젊은이는 타지로 피난을 가고, 부락에 남아있는 사람은 면 인민위원회 감시를 받는 사람과 늙은이 뿐이다. 면내 12개 부락에서 모인 사람은 자수한 궁평리의 순구와 마교리의 송필헌, 땅이 많다고 동네 사람의 시샘을 받던 북부의 대자리 윤호(金允鎬)와 젊은 사상가를 합친 30여 명의 농민이 궐기대회에 참석한 군중의 전부다.

면을 동서로 구분하고, 10개 내외의 부락이 모여 면을 이루고, 10개 내외의 동네가 모여서 부락을 이루며, 10개 내외의 농가가 모여서 동네를 이루는 것이 농촌의 행정 조직이다. 저녁에 상호가 전해들은 농민 궐기대회 모습은 다음과 같다.

사회자의 인사말로 시작된 농민 궐기대회는 김일성 노래와 빨치산 가(歌)를 부르더니, 젊은 사회자는 대회에 참석한 사람을 소개한다고 강제로 동원한 궁평리의 황순구와 돌다리의 송필헌, 대자리의 김윤구를 앞으로 부른다.

노병은 말한다

“인민의 피를 빨던 악질 지주, 대자리의 김윤호요, 하고 사회자가 소개하자 “죽여라, 죽여” 하고 군중이 웅성거리고, “애국 청년을 괴롭히던 지서 순경 황순구요” 라고 소개하니, “내 뒤를 밟던 악질 중의 악질이요” 하고 공산당원인 남수가, 기가 죽어 있는 순구의 과거 행적에 기름을 붓는다.

“이승만 정부의 개 노릇을 하던 면유지 송필헌이오” 라고 소개하자 “총알이 아까우니 때러 죽여라” 하는가 싶더니, 군중 속에서 주먹만 한 돌이 날아오고, 번쩍하고 쇠스랑이 들려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쿠” 하고 불려나온 사람이 차례로 쓰러진다.

농민 궐기 대회란 모임에 부친 허울 좋은 이름이오, 우익 인사를 학살하는 피의 숙청장(肅淸場)이다. 공산당원은 피 맛을 본 아귀(餓鬼)처럼 길길이 날뛰며 고생하고 소외당한 설음을 마음껏 푸는 피의 축제장(祝祭場)이다.

인민군은 하늘을 장악하지 못해 미군 전투기가 하늘을 누비다 의심스러운 곳은 기관총 세례를 안겨서, 공산당 모임은 야간에만 열리는 데. 봉산면에선 농민 궐기대회를 낮에 열었다가 미군 ‘쌕쌕이(미 공군 F-86형 젯트 전투기)’에 발각된다.

‘쌕쌕이’가 모여 있는 군중을 발견하고 기관총 사격을 가하니, 농민 궐기대회는 중단되고 군중은 황급히 흩어진다.

운동장엔 학살당한 3,4구의 시체가 가마니에 덮여 쓸쓸이 나둥글고 있다.

해가 지니 노상엔 인적이 끊기고 마을 전체가 쥐죽은 듯 고요한 데, “뎅...,뎅...,데엥” 하고 멀리서 들려오던 징 소리도 안 들리며, 낮에 있었던 농민 궐기대회로 팽팽하게 조였던 긴장감은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침이 마르도록 김일성의 항일(抗日) 빨치산 운동을 선전하던 인민위원(共産黨員)의 그림자도 안 비치니, 주민을 모이라고 울리던 징소리도 잠잠하다.

낮에 있었던 궐기대회 소식을 듣고, 매일같이 들려오던 징소리가 안 들리니, 상호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마을의 촌로들은 궐기대회의 본 뜻을 알면서도, 궐기대회 하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대명사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