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을 넘어 남쪽을 기습 점령한 인민군은 서울에서 2,3일을 춤춤 거리더니, 한강을 건너 파축지세로 남침하여 천안까지 침공해선, 공격 방향을 영남 지역과 호남지역으로 돌린다.
6,.25 사변이 발발하자 고향으로 내려온 상호는 마땅한 피난처가 생각나지 않아 집에서 서성거린다.
사변이 나고 한 달이 지난 7월 중순이다.
아침밥을 먹고 마루에 않았는데, 밖에서 주인을 찾으며 빨간 바탕에 노랑색 고무래 정(丁 )자 견장을 단 인민군 특무장이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온다. 호남 지역으로 남침을 계속하던 인민군의 정찰병이다.
가까이 오는 인민군을 보고 상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않는 데, 인민군은 마루에 걸터앉는다. 작업복 상의와 작업모에 실로 얽어맨 위장망이 상호를 압도한다.
인민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평안도 사투리로, “동무는 서울에서 학교에 다닌다고 들었는데, 왜 조국 해방 전선에 참가하지 않습네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동무는 우리 부대까지 같이 가야 하겠소” 라고 하며 상호를 노려본다.
상호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지 않아도 인민군에 자원입대를 하려는 데, 서울에서 이틀이 걸려서 걸어서 내려오니 무릎이 부어 걷지를 못합니다”라고 하며, 양복바지를 올려 부어오른 무릎을 보였더니, 인민군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동무를 부대 본부로 데려가려 왔는데, 같이 갈 형편이 못되니 무릎의 부기가 빠지면 인민군에 입대하는 대신 가창대(歌唱隊)에 참가하시오”, 지금 우리 영용(英勇)한 인민군은 대구까지 진격했으며, 머지않아 부산이 해방되면 우리 조국이 통일되니, 그 때는 학생도 조국 해방 전선에 참가하시오“라고 하며 자리를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