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군인가족-평화의 댐(문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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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영원한 군인가족-평화의 댐(문정은)

0 2,172 2004.05.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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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직장에서 발령을 받으려면 시체검사를 해야 한다. 남편은 신체에 이상이 없으니, 자신을 가지고 의사 앞에 섰던 모양인 데, 결과는 당뇨가 비친다는 것이다.
  신체검사를 통과한 남편은 10년간을 아무런 장애 없이 직장에 나가더니, 1987년 5월에 당뇨병 합병증이 와서 뇌출혈로 쓰러진다. 병원에서 4시간의 수술을 하고나니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회복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기는 12일간을 식물인간으로 누워지낸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나고 2개월의 치료와 투약 끝에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니, 당뇨병과 더불어 뇌를 건드린 부작용으로 오른 쪽을 못 쓰는 반신불수가 찾아온다.
  퇴원과 더불어 기나긴 투병 생활을 시작하며, 집을 사당동에서 논현동으로 옮긴 남편은, 집 앞에 있는 “도산공원”에서 7년의 투 병 끝에 다소나마 건강을 회복한다.

당뇨병과 반신불수는 완치가 안 된다고 하는 데, 추곡 약수가 당뇨병에 좋다는 말을 들은 남편은 눈이 오는 2월부터 추곡약수를 떠다 마시며 6개월이 지나니 어느 정도 약효를 봤다고 느껴진다.
  
  어느 날 아침(1995. 7. 23. 오전 10시) 전화벨이 따르릉 울리더니, 남편 친구인 김두표 씨가 추곡으로 약수를 뜨러가자고 한 다.

김두표 씨 부부와 우리 부부는 김씨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강원도 화천을 향해서 승용차로 달린다.
  오전 11시 30분 화천으로 가는 도중 춘천 사창고개 막국수집에서 빈대떡과 동동주를 곁들여 막국수를 들고, 추곡을 향해서 경춘가도를 달린다.
  ‘오봉산’ 고개 넘어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고 잠시 쉬는 데, 주유소 여자 주인이 집에서 땄다고 하며 자두 한 사발을 내다 주는데 시골 인심은 후하다.

  강원도를 암하노불(岩下老佛)이라 했는데 말과 같이 첩첩 산중이다. 춘천 시내를 떠난 지 1시간 30분을 달려 추곡(萩谷) 약수 터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1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니 약수터가 나오는 데, 절구통 같이 파인 바위틈에서 약수가 계속 솟아오른다.
  약수터로 발달된 조그마한 동네에 여관과 하숙집이 4,5채 있는 데, 전남 광주에서 왔다는 40대의 남자는 온 지가 40여 일이 된 다고 한다. 여관비는 하루에 1만 5천 원, 민박은 잠만 자는 데 7천5백 원이라고 한다.

  여관과 하숙집에는 약수를 마시며 위장병을 고치려는 환자가 8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약수를 물통에 받아 승용차에 싣고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약수터를 떠난다.
  올 때는 ‘샘밭’에서 ‘오봉산’을 경유해 약수터를 왔지만, 갈 때 는 근처에 ‘평화의 댐’이 있다기에, 댐을 관람하고 ‘파로호’를 거쳐 화천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6.25전쟁 때 열악한 우리 국군이, 중공군 1개 군단을 섬멸하고 화천댐을 확보했다고 해서, 고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 라고 명명(命名)했다고 한다.
  화천 쪽으로 가면서 댐의 수문도 보고 낚시터도 보면서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화천 시내와는 반대 방향인 ‘평화의 댐’이 있다 는 포장도로를 달린다.

  ‘평화의 댐’으로 가는 길에 ‘풍산리’ 군인아파트‘에 살고 있는 큰아들집으로 들리니, 손자와 손녀인 원재와 수진이가 2층에서 제집 식구를 알아보고 “하무니, 하부지”하고 손짓을 하며 반가워 한다.
  오랜만에 보는 며느리, 손자와 손녀는 반가우나 반갑다는 인사도 못하고, 날이 어둡기 시작할 무렵 아들집을 떠나 ‘평화의 댐’ 이 있는 포장도로를 달린다.
  날이 저물어 ‘평화의 댐’을 보려온 사람은 우리 일행밖에 없으며, 출입구 위병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수속을 마친 다음, 포장된 도로를 1시간 가까이 달려 ‘평화의 댐’ 저수지에 도착한다.
  저수지는 물이 말라 소문보다 빈약했으며, 저수지 둑엔 군인 경비 초소가 있으며, 총을 멘 군인 한 명이 외롭게 둑을 오간다.
  이북의 금강산 저수지가 폭파되면, 서울은 물바다가 된다는 언론보도와 함께, ‘평화의 댐’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모금할 때, 우리 부부도 참여한 지난날이 회상된다.        
  댐의 존재가 미치는 심리적인 효과를 생각하며, 승용차를 돌려서 서울을 향해 오던 길을 달린다.
                                                            (1995.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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