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북쪽에서 인민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따발총을 휘두르며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침공하자, 임께선 젊은이에게 인민군의 남침을 막으라고 명령하시고, 저도 12월 18일 임의 명령에 따라 군대에 들어가 인민군의 남침을 저지하고, 1969년 5월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쟁터에서 국위를 빛냈다고 무공훈장을 수여받고, 월남정부로부턴 자유를 수호했다고 1등 명예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1970년 10월 국내로 돌아와서 계속 나라를 지키다가, 1977년 1월 육군본부 추천으로 청와대로 들어가 관광산업의 부조리를 척결하고 기초를 확립하여 일자리를 늘리고(雇傭創出), 한국 관광공사로 내려와서, 외국에 나가 한국 관광을 홍보하며 외국인을 불러들여 외화를 버는데(外貨稼得) 일조를 했습니다.
한국 관광공사를 정년으로 물러나선 일본 국제관광진흥회 서울사무소를 개설하여 한, 일 친선 활동을 하다가, 1987년 5월 고엽제 후유증으로 쓸어져 16년을 투병하고 있습니다.
다행이 3년 전에 기억을 되찾아 지금은 나라의 도움으로 병을 국비로 치료하고, 매월 생계비를 보조받고 있습니다.
임의 부름 받고 전쟁터로 떠나며 선배들이 심은 번영나무 묘목이 자라서, 뒤따르는 후배가 열매를 따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