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幅) 넓은 하천을 흐르는 강물이 소용돌이나 여울을 만나지 않고 조용히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을 거울에 비유해서 한 말이며, 욕심 없이 살다가 생을 마친 사람을 가리켜 명경지수와 같은 삶을 살다가 간사람, 혹은 신선 같은 삶을 살다가 간 사람이라고 한다.
반대로 조용히 흐르던 강물이 하류에서 소용돌이를 만나 빙글빙글 돌다가 여울을 만나 급히 흐르고, 낭떠러지를 만나 폭포로 변했다가 다시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에 비유한 삶을 산 사람을, 불행한 삶을 살다가 간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 바친 사람은 그 충절을 기리고, 신체의 일부를 바친 사람은 그 명예를 선양한다.
임진 애란 때 순국한 이순신 장군이나 항일 독립투쟁에서 목숨 바친 김좌진 장군은 민족적 영웅으로 흠모하고, 그 자손들도 장군의 후광을 입는다.
김좌진 장군의 손녀딸 김을동(탤렌트)은 할아버지(김좌진)와 아버지(김두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항상 몸조심을 한다고 들었다.
일본 식민지 때의 이모(李某)나 최모(崔某), 박모(朴某) 등은 친일파라고 매도하고, 그 자손들은 살아가는데 영향을 받는다.
미국 '벤실베니아' 대학의 대학원 연구생으로 재직 중인 이광수의 막내딸 정화가, 2003년 9월 하순 한국인물저기학회(韓國人物傳記學會)가 주최하는 '춘원 이광수의 생애와 문학사상'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서울에 머물면서 모(某) 신문사 기자와 대담하는 자리에서, "아버지는 민족을 위하고 동지를 구하려고 한 행위가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관헌에게 잡혀다니고, 대한민국에서는 반민법으로 시달리고, 6.25사변이 발발하자 북한에서는 반동분자라고 잡아갔다"라고 하면서 아쉬어한다.
1947년 이화여중에 다니며 머리가 좋아 월반을 했다고 신문에 보도된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만, 한국에서 못 살고 미국에서 살며, 한국인과 결혼을 못하고 미국인(인도계 미국인)과 결혼한 그녀의 처지에 동정이 간다.
이들은 애국지사, 매국노, 친일파, 행복한 삶, 혹은 불행한 삶 등으로 표현하여, 평범한 삶은 곧 국민으로부터 잊어지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거나 신체의 일부를 바친 사람은, 그 충절과 행적을 기리며 후세에 전한다.
이와 같은 행위를 우리는 애국 혹은 매국이라 하고, 이 행위를 한 사람을 애국지사 혹은 민족반역자라고 응분의 보상을 하거나 매도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독특한 민족성으로 유사이래 수 많은 외래 침략과 내전을 겪는다.
굵직한 전쟁과 내란으론 광개토왕(391-412)의 국토확장과 왕건(918)에 의한 3한 통일,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1519)과 무오사화(1498), 기묘사화(1519) 등 각종 사화와 중종반정(1506), 정묘호란(1627)과 임오군란 (1882), 한-일 합방(1910)괴 독립군의 항일투쟁, 태평앵전쟁 (1941)과 6.25 사변, 월남군 참전 등이 있으나, 크고 작은 전쟁과 내란을 합치면 면 일일이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다.
그때마다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이 목숨과 신체의 일부를 바쳐서 나라를 지키며 오늘에 이르렀다. 옛날에는 나라에서 이들의 충정을 기리며 애국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역사책에 기록하고 글을 남기며, 정각(亭閣)을 지어 후세사람 에게 행적을 선양해왔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한산도(閑山島) 이순신 장군의 정자(亭子)와 우리 국민이 애창하는 “한산도 밝은 밤에 수루(守樓)에 혼자 앉아...,” 하는 시조다.
생 즉 사요, 사 즉 생(生卽死死卽生)이란 말이 있다. 살겠다고 발버둥치면 죽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산다는 뜻이다.
현대에 들어와선 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홍보할 뿐만 아니라, 순국한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그 유족을 보살피며, 다친 사람은 그 부상의 정도에 따라 상이등급 1급으로부터 7급까지로 분류하여 금전으로 보상하여 내외로 선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