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6월 24일 남편은 전방부대로 전속명령을 받았는데, 월남전이 끝나고 귀국한 수도기계화사단 정보참모로 보직을 받는다.
수도사단은 10년 전에 남편이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부대이며, 기계화사단으로 개편된 부대로서 꼭 10년 만에 일반참모로 다시 근무하게 되었다.
아이들도 크고 학교도 가야 하기 때문에 남편 혼자서 임지로 가고, 우리 세 식구는 서울에 남는다.
남편은 직책상 부대를 비울 수가 없어서, 우리가 부대로 면회를 갔으며, 우리는 타의에 의해서 우리는 주말 부부가 된다.
2주에 한 번씩 면회를 갔는데, 면회를 가는 주에는 아이들 학교 때문에 토요일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와야 한다. 면회를 갈 때면 항상 즐거웠으며, 다른 참모들은 관사에서 살림을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 학교 때문에 서울에서 살면서 전방으로 남편을 찾아 간다.
면회를 가는 길은 가을이라 경춘도로 양가에는 코스모스가 만 발하고, 그 가운데를 버스가 달리는 광경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남편은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 고양군으로 전속을 온다. 새로운 부대를 창설하느라 집에도 못 나오고, 천막을 치고 기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가을이 돌아와서 월동용 김장을 담글 때는 부대로 들어가서 많은 작업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부대 구경도 하고 군인가족끼리 얼굴을 익히며 친목도 도모한다.
1977년 2월 28일, 남편은 26년간 입었던 푸른 제복을 벗고 민간인이 된다.
40평생을 살면서 군에 대해서 애착과 그리움, 미련과 아쉬움이 교차되지만, 남편은 군복을 벗고서 다른 형태로 나라에 봉사하고 국록을 먹으니 위로가 된다.
주위에선 나를 군인가족으로 부르고, 나도 군인가족으로 행세하고 있어, 영원히 군인가족으로 불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