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군인가족-파월 군인가족(문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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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영원한 군인가족-파월 군인가족(문정은)

0 1,905 2004.03.25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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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영천에서부터 4개년을 40만 원짜리 적금을 부어왔는데, 남편은 월남으로 떠나기 전에 지불하는 1년 치 국내 봉급 20만원과 은행에서 받게 될 40만원을 계산해서, 친구의 도움으로 구로동에 무허가였으나, 부지가 27평에 건물이 20평짜리 집을 사서 가족을 이사 시키고 월남으로 떠난다.
  화천 오음리에서 유격 훈련을 받으랴, 집을 사서 가족을 이사 시키고 월남으로 떠나랴 몹시도 바빴으며, 월남으로 떠나는 전야에, “아빠가 먼 데로 가서 오래 있어야 한다”라고 하니, 큰아들은 “아빠 가지 말아”라고 하며 울어대서 우리 네 식구는 같이 울었다.

  남편이 월남 전쟁터로 떠나는 것을 보러 오후에 청량리역으로 나간다.
  역 대합실에는 파월장병을 환송하기 위해서 나온 군인가족으로 발 디딜 틈도 없다. 파월장병을 태운 열차가 서서히 다가오자, 역 구내에 있던 군중들은 웅성대기 시작하고, 군인 가족들은 자기 아들과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플랫포음”을 오르내리며 눈물로 바다를 이룬다.
  기차 속의 군인들은 “자유통일 위해서 임들은 모였으니...,”하고소리 높이 군가를 합창하고 있으며, 파월장병즐은 맹호부대가 주류이고, 나머지는 해병대와 주월사, 건지단과 비둘기부대다.    
  승강대 앞에 서있던 남편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잘 있어...,”하고 승강대를 오를 때는 서글픈 마음뿐이며, 전쟁미망인이란 글자가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남편의 무운이 장구하기만을 빌며 발길을 돌려 집으로 오는데, 남편의 월남전 참전을 전송하던 친정 동생 승임이와 시가의 6촌 동생 명화 도련님과 도련님 친구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다.

  이 날은 1969년 5월 15일 오후 7시다. 남편은 월남의 전쟁터로 떠났다.
  춘천에서 기차를 탄 파월장병은 청량리를 거쳐 부산까지 가서 수송함을 타고 월남으로 떠난다고 한다.
  나는 빨리 마음이 안정되고 우리 가정이 평화스러운 일상생활 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남편은 월남으로 떠나기 전에 신탁은행에다 적금을 들었는데, 월남에서 송금하는 수당은 은행으로 자동 불입하게 된다.
  월남에서 120불이 송금되면 103불이 적금으로 공제되고, 나 머지 17불이 우리의 한 달간 생활비다.
우리는 어렵게 살았지만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랐으며, 우리 가정은 행복하다.
  
  우리 부부는 떨어져 있는 동안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누가 편지를 많이 띄우나 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편지에 담는다. 서로의 음성이 듣고 싶으면 흑석동에 살고 있는 고모 댁으로 가서 월남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곤 한다.    
  월남에서 전화가 걸려와 수화기를 잡으면 말문이 막혀서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남편 목소리도 젖어 있다.

  서로의 대화도 “여보세요, 잘 있었어...,”하면 “네...,”하고 한참을 흐느끼다, “잘 있어...,”하면 “몸조심 하세요”로 끝난다.  
  신문이나 라디오에서 월남전의 상황을 보도하고, 베트콩의 공격 을 알리며 한국군의 희생을 보도할 때마다 초조하고 불안한 하루를 보내야 하고, 불안한 마음은 월남에서 같이 근무하는 군인이 고국으로 출장 나와 남편이 잘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불안한 마음이 가라않는다.        
  날이 갈수록 남편이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다른 사람의 부부가 한 집에 살면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데도 “우리는 왜 같이 못 살고 남편은 월남의 전쟁터로 갔느냐”라는 회한(悔恨)이 눈앞을 가리며 다른 사람의 가정생활이 부럽게만 보인다.

  1970년 6월 19일 남편의 정보학교 영어반 동기생으로 가까이 지내던 오휘영 소령이 전사했다는 비보에 나는 한없이 울었다.
오 소령 가족은 흑석동에 살고 있는데, 나는 오 소령의 전사 소식을 듣고 그 집을 찾아가서 가족을 위로한다.
  남편 빈소 앞에 소복을 입고 단정히 앉아있는 오 소령 부인 모습이 한없이 애처롭다. 오 소령은 중령으로 추서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남편이 월남의 전쟁터에 가 있다는 것이 점점 불안해지는데, 그 해 겨울(1970. 10), 남편은 월남으로 떠난 지 1년 5개월 만에 집 으로 돌아온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전략정보국에 근무하게 된 남편은 월남전이 한창 치열해서 야근까지 하는 형편이라 바쁜 쉴 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다.
  남편은 합참에 있는 동안 업무는 바빴지만, 바라지 않던 진급으로 소령에서 중령으로 승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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