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tv뉴스를 보니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 하며, 고령화 인구는 전체 인구의 3%이나 의료비는 전체 의료비의 10%를 점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고령화 인구에 포함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내 나이를 따져보니, 1930년생이라 만으로 쳐서 74세이니 늙었어도 한참이나 늙었다.
귓가에선 서울 후암동 삼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대한청년단원’이 목총을 메고 손을 앞뒤로 흔들며 부르는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하는 군가 소리가 쟁쟁하고, 제2국민병으로 소집되어 남하하는 과정에서 문경 새재(鳥嶺) 초가집 추녀 밑에서 날이 밝으며 걷는 것이 추위를 이기는 길이라고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졸고 있는 길동무를 잡아일으키는 순간 옆으로 눕던 장면이 생생한 데, 벌써 55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면 1평 땅 밑에 누워있는 젊은이가 수 없이 많으며, 문패 달린 표석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초등학교를 나오고 한 자(一尺) 두 자(二尺) 무명(木綿)을 팔면서 Gate란 여어 단어도 못 배우며 6.25사변을 치르고, 월남전에 참가했어도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땅 밑에 누워있는 사람에 비하면 꽤나 목숨이 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Gate란 영어 단어를 몰라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모두를 놓치고, 노후대책도 없이 쓸쓸히 지내는 것인데, 그나마 국가에서 먹여주고 병을 치료해주며, 차를 태워 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뇌물(賂物)이라는 단어도 없었고 노후대책(老後對策)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배우지 못한 단어를 후회해 본들 소용이 없으며, 얼마 남지 않은 세상 단념하고 그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