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에 야전군사령부에서 열리는 참모회의 참석 차, 정보, 작전, 군수참모와 수행원 10여 명의 영관장교가 아침 일찍 비행기 2대로 분승하여 ‘나트랑’을 향해서 떠났다.
상호도 참모를 수행하기로 되었으나, 최근의 적정을 분석 보고하라는 사령관 지시로 참모 혼자만이 ‘나트랑’으로 떠난다.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하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사병에게 그 원인을 알아보니, 참모회의 참석 차 아침 일찍 비행기 2대에 나눠 타고 가던 참모부 장교들이, 뒤에 가던 2번기가 야전사(野戰司) 뒷산에 추락하여 조종사를 포함해서, 타고 가던 작전참모와 군수참모 등 8명의 영관장교 모두가 전사했다고 한다.
“저승으로 가는 길이 문 앞에 있다”더니, 삶(生)과 죽음의 갈림길 에서 발길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참모회의 자료를 챙겨주던 동료 장교들이 사무실을 떠나던 고인의 모습을 상기하고, 임자 없는 책상을 바라보며 허탈해 한다.
날이 밝으며 오전에 야전군사령부에 안치됐던 전사자 유해가 주월 한국군사령부로 옮겨올 때, 사령부 분위기는 숙연하다.
작전참모와 군수참모는 사관학교 동기생으로, 올 해 진급 발표에 둘 다 장군 진급 예정자로 발표되어 , 진급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같은 비행기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아이가 없는 작전참모가 군수참모 딸을 양딸로 키우고 있어, 두 사람은 사관학교 동기생 이상으로 친하다는 데, 작전참모 양딸은 친아버지와 양아버지를 동시에 잃었다.
동아일보에 “비운의 가족”이란 제목으로 전사자의 주변 근황을 소개하고 있다. 오전 9시에 전사한 장교들의 장례식이 있었다.
미군 장성과 월남군 장성이 참석하고, 사령부 전 장병이 참석하는 성대한 장례식이다.
날씨는 덥고 땀은 등줄기로 흐르는 데, 장병은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덥다는 생각은 할 겨를도 없다.
본국에서 유가족을 위해 대대적인 원조활동을 전개 중이라니 슬픔 속에서도 한 가닥 위안이 된다. 귀국을 한 달 앞둔 1970년 9월 15일이다.
아침 브리핑이 끝난 자리에서, 사령관이 앉아있는 참모부 장교들을 향해, “전투정보과 에서 정보판단을 잘해서 ‘베트콩’의 공격을 미리 대처하고,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칭찬을 한다.
사령관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자, 참모(全載鉉 大領)가 상호 곁으로 다가와서 사령관이 하던 말을 되풀이하며, 사령관으로부터 정보참모부 전체가 수고했다는 칭찬을 들었다며 고마워한다.
그것은 일주일 전의 일이다. 미군사령부에서 보내온 포로심문보고서를 번역하는데, 의례적인 영문 가운데, "베트콩 1개 대대가 한국군 기지를 공격할 것이다(VC1bn will attack ROK ARMY base....)"라는 활자가 눈에 들어온다.
상호가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에 전방에서는 주간이면 전투준비를 하고, 야간에는 매복을 나가기 때문에 첩보보고는 신중을 기하는 데, 공격 장소나 날짜도 없이, 베트콩 1개 대대가 한국군 기지를 공격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찜찜하다.
그래서 베트콩 1개 대대가 은신하고 있는 '죽음의 계곡'의 베트콩 요새를 생각하고, 월남지도가 그려진 첩보보고 용지에다 첩보 입수 일자를 기록하여, "베트콩 1개 대대가 공격한다는 첩보가 있다"라고 명시해서 사령관실에 돌린 일이 있다.
28연대 1대대가 전투태세를 완비하고, 매복 이틀째인 9월 24일 깊은 밤중에, 야습하는 베트콩 1개 대대를 철조망 근처까지 유인해서, 조명탄을 발사하고 기관총을 사격하며 '크레모아'를 터트려 철조망으로 접근하는 베트콩 4명을 사살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리고 적을 격퇴한 일이 있다.
오후에 참모로부터 화랑훈장을 신청하라는 지시를 받으니, 그동안 쌓인 피로가 일시에 가시며, 전쟁터에 와서 훈장을 받고 귀국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하는 일이 바빠서 참모회의에 불참(不參)했더니, 전사자 명단에서 상호 이름이 빠지고, 참모회의에 불참한 대가로 훈장을 밧는다.
월남공화국 자유수호에 기여했다고 ‘티우’ 대통령을 대신해서 월남군 심리전 참모가, 수고한 한국군 장교에게 월남 1등 명예훈장을 준다(1970. 10. 5)는 데, 상호도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행정실 김영호 하사가 알려준다.
오후 1시에 심리전참모실에 도열한 3명의 영관장교에게, 참모는 일일이 훈장을 달아주며 악수를 청하고 그동안의 수고를 치하한다.
저녁에 사령부 연병장에서 한국 연예인단의 장병 위문 공연이 있었다. 이미자, 한명숙, 위키리, 남보완, 동방성애가 공연하는 가설무대다.
공연이 시작되며 남보완의 사회사에 뒤이어 순서에 따라 가수들이 노래를 하는데, 이미자가 노래를 재창, 3창,...,7창까지 하는 순간, 사령부 근처에서 “쾅” 하는 폭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는다.
한국 헌병대 앞에 주차시켰던 ‘찌프’가 폭파되었다고 한다.
이미자는 노래를 계속하는 데, 본부대대 사병이 나가서 노래를 중지시킨다.
한국의 연예장 무대에서 노래하던 가수들이, 월남에 와선 야외 가설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데, “쾅”하는 폭음은 월남이 전쟁을 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찌프’의 폭파로 알리는 ‘베트콩’의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