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노병의 독백 - 월남전이 남긴 상처-중대장과 선임하사

[62] 노병의 독백 - 월남전이 남긴 상처-중대장과 선임하사

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62] 노병의 독백 - 월남전이 남긴 상처-중대장과 선임하사

0 2,133 2003.09.08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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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노병의 독백 - 월남전이 남긴 상처-중대장과 선임하사

중대장과 선임하사

상호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니, 발병 당시엔 기억 상실증으로 모든 지식을 잊고 엎드려 투병을 시작했으나, 이제는 보행이 가능하고 대화를 할 수 있으며, ‘벤즈’나 ‘폭스바겐’이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로, ‘벤즈’는 동그라미 속에 풍력 발전기 와 같은 세 개의 날개를 그린 것이 마크이고, ‘폭스바겐’ 은 동그라미 속에 알파벳의 W자를 그린 것이 마크라는 것을 기억하 니, 기억력의 70%는 회복한 셈이다.

친구 집을 가려고 지하철 환승역에 내려서 전차를 환승하려다, 기억을 상실하고 5,6분을 헤매다, 정신이 들면 다시 목적지를 찾아가는 상호다.   

상호가 외부 세계와 단절하고 10여 년을 투병하니, 건강은 되찾았으나, 그동안 물정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졌다.

발병하기 전엔 사회의 선두에 서서 국민을 이끌어가던 상오가, 이제는 국민 대열의 후미에 서서 이끌려가는 형편이다.

1966년 봄에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서 미군이 출품한 집채 같은 컴퓨터를 보고, 미국의 선진 기술에 깜짝 놀라던 상호였는데, 37년이 지난 지금은 T.V 모양의 단말기에 컴퓨터 사용이 일사와 되고, 한국이 I.T산업의 선두를 달린다.

상호가 투병을 하며 왼쪽 눈이 안 보인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 고 산다는 것이 불편해서, 종로 2가 공병우 안과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니, 당뇨에서 오는 실명이라고 하며, 큰 병원으로 가라며 을지로 2가에 있는 을지병원을 소개한다.

젊어선 지구도 멜빵을 걸어서 지고 갈 기개(氣槪)였는데, 늙고 병드니 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을지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약을 복용하는데, 신경 회복약에 안약을 추가하니 약값에 부담이 간다.

상호는 월남전에 참전하여 국위를 빛냈다고 무공훈장을 받았는데, 훈장 받은 사람은 보훈병원에서 약값을 감면해준다는 소문이 들린 다.

보훈병원은 기동(起動)이 어려운 상이군인을 치료하는 병원으로 알고, 상호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무공 수훈자도 약값의 감면혜택 을 준다고 한다.

1998년 6월 1일 오전이다. 보훈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안과 를 갔더니, 10여 명의 환자가 자기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거나 복도에서 서성거리는 데, 넥타이를 맨 신사 한 분이 상호 곁으로 온다.

“저어 1연대 2중대 중대장을 하시던 김 대위님이십니까”하고 친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예, 제 이름은 김상호입니다만...,” 학고 상호가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니, “역시 중대장님이시군요, 저어 2소대 선임하사로 있던 장기선(張基宣) 중삽니다.

실수를 할 것 같아 망설였습니다만, 특수한 병원이라 용기를 내어 여쭈어 보았습니 다”하고 자기를 소개하며 명함을 건네준다.   

상호가 명함을 보니, 전북 익산에서 신문사 지국장으로 있다.

젊은 시절의 장 중사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 상호도 장 사장 양손을 잡으며, “이거어 헤어진 지 35년의 세월이 흘렀구려...,”하고 반긴 다.

상호는 중대 간부의 얼굴과 이름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으며, 그때 있었던 일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상호가 중대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64년의 초여름이 다.

가평 하사관학교를 나온 분대장이 보직을 받자마자 10일간의 휴가를 얻어 집으로 가는 길에 , 영등포 역에서 철길을 건너다 역사 (轢死)하는 안전사고가 발생한다.

상호는 중대본부로 시체를 운구(運柩)하고, 유가족을 참석시킨 가운데 조총(弔銃)을 쏘며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한다.

상호 아내는 당시를 회상하며, 분대장의 장례식도 생각나지만, 우체국 저금통장에서 장례비를 인출하던 생각은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상호가 주번이 끝나고 퇴근을 하면 내복에 이(蝨)가 많아 옷을 입고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내복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DDT나 살충약이 귀했던 시절이라, 몸에 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사람이 자는 방에 벼룩이나 빈대가 있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어느 날 오전에 병사가 자는 내무반의 침상에 농약을 뿌리고, 오후에 침상에 올라가 발을 구르니, 죽은 빈대가 빨갛게 땅바닥으로 쏟아지던 장면이 떠오른다.

1965년 2월 하순이다.

강원도 추위는 매서웠다.

상호 중대가 동계 적응훈련을 겸해서 중대 공격으로 고지를 점령한 이후, 눈이 10cm 나 쌓인 고지 정상에서 야영을 하고,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배경으로, 탄대를 잡고 심호흡을 하던 정경을 잊지 못한다.

군대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연령의 다과(多寡)를 떠나, 중대장은 중대 간부의 사생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상호와 같은 연배의 인사계가 동네 노름에 빠져, 3개월 동안 집으로 봉급을 가져오지 않아  부인이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서, 상호가 주번을 하며 권총을 차고 동네 노름방을 찾아가서, “군인을 상대로 노름을 하지 말라”고 위협을 하던 추억이 회상된다.

“장 사장은 나하고 헤어진 이후 어떻게 지냈습니까”라고 하는 상호 무름에 장 사장은, “1965년도에 월남으로 파병되어, ‘베트콩’ 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고 본국으로 후송되어, 부상의 치료가 끝난 후에는 국가 유공상이군인으로 분류되어, 정부로부터 국비환자로, 병은 무료로 진료 받고, 매월 생활비의 일부를 보조받고 있습니다” 라고 한다.

장 사장은 국가유공상이자로 정부에서 생활을 지원 받고 있다는 데, 상호는 책임도 없으면서 장 사장에게 미안함과 안쓰러운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30여 년 전 국민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군대에 들어온 젊은이가 지금은 중년이 되어 각자 다른 형태로 나라에 봉사하고 생업을 이어갈 것이다.

다시 한번 그리운 얼굴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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