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중대장과 고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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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31]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중대장과 고문관

0 2,585 2003.08.2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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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중대장과 고문관

중대장과 고문관

최고 학부를 나왔으니 외형적인 공부는 끝났으나, 영어실력이 짧다고 생각되어 1963년 4월 1일부터 시작하는 외국 주재 무관 양성을 위한 전략정보 영어반 시험에 합격하여 10개월간 영어를 배우기 위해 충남 논산에서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 정보학교로 떠난다.

10개월간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배우니, 영어에 대한 눈이 트인다.

영어반을 졸업하고 부대 배치를 받는데, 졸업 성적에 따라 배치를 받으니, 전투서열이 빠른 맹호사단이 차례 온다.

보병 제1연대(聯隊長 金宙明 大領) 신병중대인 제11중대장 보직 을 받고, 150여 명의 신병 교육훈련과 복지를 책임진다.

야전 지휘관이 군인의 꽃이라면 연대장이나 대대장보다 중대장을 꼽는다.

연대장은 3게 대대장만 책임지고, 대대장은 4개 중대장만 장악하면 되지만, 중대장은 150여 명 장병의 일상생활을 책임져야 하니,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뜻밖의 사고와 사건이 벌어진다.

중대 훈련은 교육 계획에 따라 독자적으로 진행 되지만, 대대 훈련  은 대대장의 용병술을 시험하고, 각 중대의 훈련 결과를  판정하는 훈련이다.

대대장은 대대 야외 훈련에 신경을 쓰며, 그 성적에 따라 대령으로의 진급이 결정된다.

열대야가 계속되는 8월의 저녁이다.

훈련 계획에 따르면 9시에 적의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10시에는 부대로 복귀하게 돼 있다.

저녁 6시에 석식을 마치고, 공격 대기지점에서 공격준비를 하는 각 소대 장병의 군장을 점검하고 있는 데, 3소대 소대장(金漢平 少尉)이 저녁 먹은 것이 체해서 피를 토하며 쓸어져 있다.

즉시 무전으로 대대장에게 연락하니, 30분도 안 되어 헬기가 날라 온다.

김 소위를 후송하고 며칠이 지났는 데, 김 소위가 원대로 복귀해서 “야외 훈련 때 중대장님이 신속하게 손을 써서 무사히 퇴원을 했습니다”라고 사의를 표한다.

중대장으로서 장병의 일상생활을 책임지다보니, 부대가 가지고 있는 재산도 많거니와 먹거리를 장만하는 취사장 운영도 중요하다.

남들은 장교와 장교 부인이면 다 같이 공부를 해서 지식층으로 알고 상류 생활을 한다고 믿는 데, 상호는 봉급만으로 살자니 수준 이하의 생활을 해야 한다.       

휴전이 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중대 장부상엔 전투 때 망실한 보급품이 그대로 남아있어, 망실수가 많은 중대는 연대본부에서 보급품의 추진이 안 되니, 중대 사병은 작업복을 기워 입어야 한다. 장부상에 망실 수자가 없는 중대는 보급품이 정상적으로 추진 되 니, 항상 깨끗한 작업복을 입고, 정상적인 내무생활을 한다.

중대장으로 보직을 받고 부대 근처로 이사하니, 저녁에 취사장 선 임하사가 집으로 찾아온다. 방문 목적을 물으니 약간의 주식과 부식 을 가져왔다고 한다.

급료가 적어 장교는 부대에서 식사를 하고, 봉급은 가족의 부양에도 모자라는 형편이니, 취사장 선임하사가 중대장의 생활을 염려해서 밤에 쌀과 두부를 가지고 집으로 찾아왔다.

선임하사의 마음 씀씀이를 고맙게 생각하며 오해를 할 것 같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는 봉급만으로도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니 가지 고 온 주식과 부식은 가지고 돌아가라”라고 하니, 취사장 선임하사 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돌아간다.

다음날 아침이가.

부대로 출근하니 창고에 보관했던 모포가 20여 장이나 없어졌다고 한다.

다른 중대에는 신품 모포가 없는 데 상호 중대는 장부 상 망실 모포가 없어서 창고에 신품 모포가 있다.

민간인은 일상생활의 의식을 군수품에 의존하고, 중대장도 장교의 위신을 보급품에 의지하고 있었다.

상호는 즉시 공급계를 불러 “창고에서 모포가 없어진 것은 중대장의 지휘 능력을 무시한 행동이니,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처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라고 훈계를 하고 돌려보낸다.   

하루는 산중에서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시간이다.

대오를 짓고 군가를 부르며 귀대하는 데, 사병들은 나무 하나씩을 들고 부대로 향한다.

처음 근무하는 중대장 직책이라, 사병이 들고 가는 막대기에 신경을 쓰지 않고 무심했는 데, 중대 대열이 상호네 집 앞을 지날 때 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를 마당으로 던진다.

100여 명의 병사가 던지는 막대기가 한 곳에 쌓이니, 조그마한 나무동산이 형성된다. 후방에서 봉급만으로 생활하던 상호에겐  색다른 풍경이라 부대에 복귀해서 인사계를 부른다.

“우리 집 땔감은 한 달에 나무 두 짐이면 족한 데, 중대장 집을 생각하고, 중대장 의사를 무시하는 행동은 동의하고 납득하기 어려우니, 앞으로는 이와 같은 행동은 하지 말라”고 하니, 인사계 수첩에서 중대장 집 식량과 연료 공급은 삭제된다.

대대가 한 지역에서 주둔하고 있지만 취사는 중대 단위다.

아침에 중대 본부로 출근하니 간밤에 취사장 창고에 보관했던 쌀 한 가마니 가 없어졌다는 보고다.

취사장 선임하사를 앞세우고 취사장 주위를 살피니, 무거운 쌀가마니를 운반하느라 쉬었던 자리에 쌀 낱알이 떨어져 있다.

쌀 낱알을 가리키며, “이 흔적을 따라가면 최종 목적 지를 확인하겠지만 더 이상 추궁은 하지 않겠으니, 앞으론 이와 같은 행동이 없기를 바란다”라고 하니 취사장 선임하사는 묵묵부답이다.

상호는 중대장으로 보직 받고 이사 오던 첫날밤에 찾아왔던 선임하사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다음날 아침이다.

인사계(田容鎬 上士)가 가까이 오더니 정색 하고 말하기를, “나는 가족이 있어 살림을 하고 있는 데, 상사 봉급 으론 가족을 부양하지 못해 식생활을 부대 취사장에 의지하고 있습 니다.

중대장이 취사장에서 쌀을 못 나가게 하니 식생활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는 곳도 없으니, 중대장님이 가족 부양에 대한 해결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한다.

불만 아닌 인사계의 솔직한 호소에, 상호는 취사장 운영에 애로가 없는 연대 수색중대 정(鄭泰雄) 대위에게 자신의 애로사항을 말하고, 전 상사의 전입을 부탁하니 쾌히 수락한다.

정 대위는 훈련소 인사참모부(參謀 朴承允 中領) 보임과(課長 朴英旭 少領)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 계장이다.

연대에서 작업복 공급을 위해 트럭이 도착하면, 작업복을 연병장에 내려놓고 각 소대 에 균등히 분배하면, 중대 연락병은 상호 작업복을 구하느라 각 소대를 분주히 오간다.

1964년 여름의 일요일 오후다.

각 소대 사병들은 자유시간이라 연병장에 흩어져 자유롭게 뛰노는 데, 공중을 날던 헬기가 대대 연병장에 내려앉는다.

대대장이 뛰고 상호도 뛰어가니, 별 셋의 부군사령관 한신 장군이다.

그가 1971년 7월에 훈련소 소장으로 있을 때, 상호 는 중위 계급장을 달고 카아빙총 사격장에서 만나서, 얼굴은 기억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으론 한신 중령은 고향이 함흥이며, 1948년 4월 제2연대가 가담한 제주도 4.3 사건에 이어 10월에는 제4연대 소속 김지회 중위가 주도한 여순반란사건, 38선을 경비하던 제8연대 소속 강 소령과 표 소령의 2개 대대 월북 등으로 실추된 군의 사기를 진작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옹진반도로 월남한 서북청년단원을 중심으로 제18연대를 창설했으며, 죽어서 백골이 되도록 싸우겠다고 부대 이름도 백골부대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6.25 사변 때는 1950년 10월 1일 오후, 그의 연대가 제일 먼저 38선을 넘었으며, 고향 함응으로 북진 시에는 시민이 ‘플래카아드’를 들고 환영했고, 장전까지 진격한 그의 부대가 적의 포위망을 뚫고 후퇴 시에는 연대장 이 앞장서서 부대를 이끌었다는 군인의 우상으로 ‘카리스마’적인 존재다.

헬기에서 내린 한신 장군은 달려간 상호를 보고, “중대 변소로 안내하라”는 명령에 따라, 상호가 야산에 구덩이를 파서 만든 중대 야전변소로 안내하니, 사병들이 배설한 변을 유심히 살핀다. 변의 색채나 상태가 나쁘면 중대장이 사병 관리를 잘못했다고 해서 벼락이 떨어진다는 데, 다행이 변 상태는 깨끗하다.

다음은 중대 창고로 안내하라기에 상호가 중대 창고로 안내해서 문을 여니, 창고 안에는 호박이 수북이 쌓여 있다.

어찌 된 호박이냐고 묻는 한신 장군 질문에, 중대 각개전투 교장이 산비탈에 있는데, 그곳에 호박을 심어 수확을 해서, 연대에서 추진하는 부식물에 추가해서 중대에서 공급할 호박이라고 답변하니, 대대장실에 마련한 코오피도 안 마시고 헬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1965년 2월 초순이다.

아침 일찍 중대원을 산속에 있는 화생방 (化學, 生物學, 放射能) 교장으로 데리고 가서 훈련을 하는데, 가평 군단 사령부에서 홍천 사단사령부로 가던 미군 고문관이 길가에 있 는 안내판을 보고 산중 교육장으로 들이닥친다.

상호가 마중을 나가보니 미군 대령이다.

계급이 높으니 고문단장이라 짐작하고 교장으로 안내한다.

눈이 쌓인 산중 교육장이라 고문관이 오리라곤 생각지 않았는 데, 미군 고문단장이 들이닥쳤다.

중대 사병이 독가스로 오염된 지역을 통과하는 훈련을 하고 있어, 대동한 통역관의 양해를 얻고, 영어로, “중대원이 독가스로 오염된 지역을 통과하는 훈련을 실시 중(The company soldier passing a poison contaminated area)라고 설명하니, 고문단장은 이것저것을 물어보곤, “너는 우수한 중대장(You are a vest commander)이라고 하더니, 찌프를 타고 사단 사령부로 돌아가서, 상호 중대의 훈련 모습을 얘기했던 모량이다.

상호는 통역관을 사이에 두고 간접 대화만 하던 고문관이  직접 대화를 하니, 자연 우수한 중대장이란 소리가 나왔으리라 짐작한다.

고문관 말 한마디에 온 사단이 긴장하고, 연대장이 찌프를 타고 교장을 다녀가고, 사단 교육과장(장태완 중령)이 진위를 확인하는 전화가 온다. 당시의 교육과장은 신군부의 처사에 반대하다가 옷을 벗고, 김대중 정부 때 재향군인화장을 거쳐 지금은 새천년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있는 장태완 장군이다.

군에서는 각 특과 장교를 보충하기 위해서, 중위, 대위로 근무하는 장교들에게, 자기 소질에 맞는 병과로 전과(轉科)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씩 준다.

상호도 1년 열 두 달을 배낭을 메고 전투훈련을 하는 보병보다는, 장병을 모아놓고 정신무장을 강화시키는 정훈장교가 보다 학구적일 것 같아, 정훈으로의 전과를 희망하고 16주의 초등군사반 교육을 마쳤다.   

1965년 5월 초순이다. 중대원을 데리고 산중 교육장에서 소대 공격 훈련을 하고 있을 때다.

10시가 조금 넘었는 데, 오전내로 연대장 앞으로 출두하라는 전달이 온다.

훈련을 소대장에게 맡기고 4km 정도 떨어진 연대 본부에 도착해서 연대장실로 들어서니, 연대장은 상호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들어서는 상호를 보자마자, 연대장은 “김 대위, 정훈으로의 전과를 희망 했나”하고 묻는다. 상호가 정훈장교 반 16주를 졸업한 것은 한 달이 넘었다.

상호는 그제야 연대장이 부른 의도를 알았다.

“네, 정훈병과로 전과하기 위해서 정훈장교 반을 나왔습니다”라고 답변하니, 연대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김 대위, 특과장교와 보병장교는 소질이 달라,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은 이상(理想)이야, 현실은 칼이 펜보다 강해, 김 대위는 대대장과 연대장을 할 사람이야, 전과는 지휘관의 이름으로 허락하지 못해”하고 부드러우나 단호하게 말한다.

상호도 꼭 전과를 희망 한 것은 아니며, 전과의 기회가 있다기에 한 번 희망한 것뿐이다.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과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정훈초등군사반을 나온 채로 물거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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