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노병의 독백 - 요산요수회(樂山樂水會) 사람들

[2] 노병의 독백 - 요산요수회(樂山樂水會) 사람들

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2] 노병의 독백 - 요산요수회(樂山樂水會) 사람들

0 3,016 2003.08.1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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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병의 독백 - 요산요수회(樂山樂水會) 사람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업을 벌이고 열심히 뛰던 사람도, 나이를 먹으니 싫던 좋던 간에 벌였던 사업을 자식들에게 인계하고 주변을 정리해야 할 시기가 돌아온다.     

가을의 오후 따듯한 날씨에 건강을 염려해서 근린공원 보행도로를 돌며 운동을 하던 노인들도 운동이 끝나면 휴게소로 가서 휴식을 즐기고, 휴게소에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한 요산요수회 사람들이 공원에서 놀다가 하나, 둘씩 휴게소로 모여든다,

대한청년단의 훈련부장을 지냈다는 김수종(金壽鍾), '케이로'부대원이었다는 민항기(閔恒基)가 마루에 앉아서 오른쪽 다리를 절며 다가오는 상이군인 박성기(朴聲基)를 맞는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이 공원에서 소일하는 노인들이지만, 젊어서는 나라를 대표하는 직업에 종사하던 주역들이다. 오늘의 술당번은 '케이로'의 민으로 5,6명의 회원이 모인 것을 확인한 민은, 공원 철조망 건너에 있는 '오렌지 마트'로 달려간다.

소주 5병과 밥집에서 사 온 3천 원짜리 도시락 반찬이 술과 안주의 전부다.

술이 한두 잔 목으로 넘어가고 뱃속이 뜨듯해지니, 각자 가슴에 품어오던 젊은 시절의 자랑이 시작된다. 한청(大韓靑年團)의 훈련부장을 지냈다는 김수종은 매일 아침 상의를 벗은 알몸으로 청년단원들과 같이 대오를 짓고 뛰면서 청와대 앞을 지날 때면, 일부러 '하나, 둘...,하나 둘'하고 큰 소리를 외쳤고, 구호를 들은 이승만(李承晩 博士) 대통령이 신생 국군의 장교로 오라는 부름을 정중히 사양했다고 몇 번이나 들어오던 자랑을 또 시작한다.

 박성기는 1946년 가을, 황해도 벽성군에서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옹진반도로 피난 와서 시청(西北靑年團)에서 활동하는 데, 사회는 정세가 어지러워 1946년 10 1일의 '대구폭동사건', 1949년 4월 3일의 제주도 폭동사건, 10월 19일 제4연대 소속의 김지회(金智會) 중위가 일으킨 여순 반란사건, 이어서 38선을 경비하던 제8연대 강 소령과 표 소령의 2개 대대가 월북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사기가 떨어진 군의 사기를 북돋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다고 옹진반도로 월남한 청년을 중심으로, 한신 중령이 제18년대를 창설하자, 박성기는 서청(西北靑年團)에서 반공 활동을 하다가 군에 입대하여 정성화 소령이 지휘하는 제2대대로 배치되었으며, 죽어서 백골이 되도록 싸우겠다고 해서 부대이름도 백골부대로 명명하고, 부대가(部隊歌)도 백골가로 명명했다고 한다.

1948년 나라가 독립을 선포하고 국방경비대가 국군으로 개칭되고, 1950년 6월 25일 동족끼리 싸우는 전쟁이 발발하자, 박은 군인으로 38선을 오르내리며 여러 번 부상을 당했으나, 마지막 부상은 1952년 가을‘백마고지’방어전투 때였다고 한다.

중공군이 '백마고지'를 점령하려고 기어오르는 데, 고지를 방어하던 박은 적이 쏘는 포탄의 파편이 대퇴부를 관통하고 국부에도 들어가, 부산 제1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대퇴부의 파편은 수술로 꺼냈으나, 국부의 파편은 수술도 못하고 상사 계급장을 달고 명예제대를 했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상호는 우리 군대가 성년으로 자란 군대로 알고 있는 데, 박은 국군을 국방경비대로 표현하고, 한신 대장과 정성화 대장을 한신 중령, 정성화 소령으로 표현 한다.상호와 박은 다 같은 70대의 노인인 데, 서로의 생각과 표현이 다른 것은 군대 생활의 시기 차이다.

1952년 여름 미 공군 쎄이버(F-86) 전투기 편대가 해주 상공을 날다가 그 중 한 대가 지상에서 쏘는 포화에 맞아 멸악산에 추락하고, 비행기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탈출하여 산속에 숨었는데, 전투기가 추락하는 것을 본 인민군이 산속으로 올라와 수색을 하고, '케이로' 부대원이었던 민이 “조종사를 구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선회하는 우군기의 엄호를 받으며 비행기에서 뛰어 내릴 때, 낙하산이 펴지며 점점 다가오는 소나무 그림자와 부풀어오는 지상 구조물에, 곧게 뻗었던 다리가 저절로 오물아 들더라고 회고를 한다.

주기(酒氣)로 모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을 때, 처음 보는 사람이 고급 오토버이를 타고 요산요수회 사람들이 쉬고 있는 휴게소로 다가온다.

마루에 걸터앉은 낮선 사람은 상호 일행을 바라보며,“나는 12단  지의 '장미 아파트'에서 사는‘김영배’라고 합니다. 나이는 70이고 앞으로도 종종 여러분을 만날 텐데 잘 부탁 합니다”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장미 아파트의 12단지라면 75평형으로 상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사 는 아파트다. 고급 오토바이를 타며 소일하는 사람이라면 등산이나 공원에서 소일하는 서민층 노인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신분이다.

“선생님은 군대생활을 어디서 하셨습니까”라고 “케이로”의 민 이 물으니, 김은“1950년대에 처남이 00군청 병사계로 근무하여, 처 갓집에서 뇌물을 쓰고 군대는 면 했습니다”라고 답변한다. 듣고 있 던 노인들은 어수선한 세상에서 군대도 안 가고 용케도 살아남아 고급 오토바이를 타며 소일을 한다고 부러운 눈초리다.

註 1. 백마고지     
강원도 서북방에 위치한 고지(395)로 1952년 10월 3일부터 13 일까지 10일간에  걸쳐 국군 제9사단이 중공군 제38군의 12차에 걸친 공격을 물리친 격전의 요충지 다.       
2. 백골부대     
육군 제18연대의 통상 명칭임.
3. 케이로(KLO)부대     
한국인 청년으로 조직된 군번 없는 미군 첩보부대로, 6.25사변 중 창설되어 적진 후방에  격추된 미군 조종사의 구출과 첩보획득,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부대로서 휴전이 되고 전선이 안정되자, 1954년 1월에 해산되었으며, 연평도를 기지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휴전이 된 후에도 연평도를 포함한 주변 도서가 우리 국토로 편입 됐다.       
KLO부대라고 하는 것은 CIA Far Eastern Command Korea Liaison Office의 예하 부대로서, Korea Liaison Office의 머리글자를 따서 KLO부대라고 불렀다.         
NLL:미군이 한국군에게 더 이상 북쪽으로 올라가지 말도록 바다 위에 제한선을 그은 것이 휴전선을 대신하는 북방한계선(NL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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