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패배(1945.8.15)하고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하니, 한민족(韓民族)은 36년간의 일본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된다.
일본 사람이 본국으로 철수하니 국민들은 피식민지(被植民地) 국민의 공포에서 해방되고, 젊은이는 징병과 징용이란 이름으로 군대와 공장에 끌려갈 공포가 사라진다.
처녀도 여자정신대란 이름으로 종군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아 좋았다. 저녁이면 부락마다 울리는 풍물 소리가 여름내 들려온다.
여자 공출(군대위안부)을 피해 한 달 전에 아랫집 순이(李順伊)는 16의 나이로 이웃 마을 승호(金勝浩)에게 시집을 갔는데, 시집가고 난 뒤엔 임자 있는 몸이라 여자 공출을 면했는데, 해방이 되니 한 달을 못 참은 순이가 결혼을 비관한다.
일본 사람이 물러가고 미군이 들어와서 군정을 실시하나, 한국의 풍속과 전통을 몰라 정치는 겉돌고 법률은 무시되며 치안은 문란하다.
청년은 칼 차고 거리를 활보하며 목소리 큰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오, 힘없는 사람은 숨소리를 죽이고, 관공서는 임자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고, 남녀간에 눈살을 찌푸리는 애정 행위도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말썽 없이 덮어진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 양조장에서 술 배달을 하던 기호(楊基浩)는 일본 사람이 들어가며 양조장을 넘겨주니, 하루아침에 양조장 주인이 되어, 장날이면 일본 사람이 버리고 간 칼을 차고 장터를 돌면서, 아는 친구를 만나면“자네 장에 왔는가..., 집안도 다 무고하겠지”하고 변성된 목소리로 억양을 높인다.
일본 식민지 통치 때는 우민정책(愚民政策)으로 정부에선 학교 건물의 건립을 기피하고 한국 사람이 배우는 것을 싫어하니, 학교는 배울 사람은 많은데 숫자는 부족하고, 무식꾼이 많으나 먹고 살기에 바빠서 못 배운 것이 허물이 되지 않는다.
동내마다 학교 대신 한문을 배우는 서당이 있으며, 신학문을 배워서 눈이 떠진 사람들은 부락마다 야간학교를 세우고 강습소를 개설하여 청소년의 무식을 없애려 노력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독립군으로 활동하던 “김좌진”장군이 만주로 가기 전에 충남 홍성읍에 세운 호명(湖明)학교가 유명하며, 1935년“동아일보”에서 현상 공모한 장편소설에, 심 훈(沈薰)이 응모한 상록수(常綠樹) 소설은 당시의 사회상과 우리 국민의 무식을 면하려는 몸부림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호가 장을 보는 “한내”장날이다. 장터 입구 다리 위에는 국민학교를 나와서 유식하다는 면 의용소방대원이 길을 막고 서서, 장터로 들어가려는 남자 젊은이에게 국민학교 1학년 국어책을 펴놓고 읽으라고 해서, 읽지 못하고 우물거리면 집에 가서 한글을 깨우친 후에 장에 나오라고 돌려보낸다.
한 대원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 상호를 불러 세우곤, 아버지, 어머니, 바지, 저고리라고 쓰인 책장을 가리키며 읽어보라고 하는데 상호가 피식 웃으니, 그 대원은 상호 멱살을 잡고, “이 자식 남은 힘 들여 말하는데 너는 웃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니” 하며 상호를 신작로 가로 끌고 간다.
언제 보았는지 상호 6촌 매부가 달려와서, “이 사람은 내 처남이야, 한글은 알고 있으니 나를 믿고 통과시키라”는 보장을 받고 위기를 모면한다.
해방이 되니 서구의 문물제도가 홍수같이 밀려오나 일부 품목은 귀해서 10년 전으로 후퇴한다.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한다고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북쪽엔 소련군이 진주하여 공산당 식 군정을 실시하고, 남쪽엔 미군이 들어와서 민주주의 방법으로 군정을 실시하나, 상호가 느끼기엔 정치의 구심점이 없어서 그런지, 민주주의요, 공산주의요, 국대안(국립종합대학 안) 찬성이오, 반대요, 혹은 찬탁(UN 신탁통치 찬성)이오, 반탁(UN 신탁통치 반대)이오 하며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시민의 외침이 일본 식민지 통치 때보다도 더 혼란스럽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은 귀하고, 전지(電池)가 생산되지 않아 해방 전에 쓰던 전등(電燈)은 무용지물이 된다.
매독에 특효약이라고 하는 606호 주사약도 자취를 감추고, 미국에서 수입한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는 '페니세린'주사약과 '다이아찡'이란 정제약(錠劑藥)이 약국을 휩쓴다.
이북(北韓)과의 교역 상품도 일상생활에 필수 약품인 '페니세린'주사약과 '다이아찡' 정제약을 수집해서 작은 보따리를 만들어 38선을 넘으면, 이북에선 북어와 마른 오징어로 큰 보따리를 만들어 약품과 바꿔준다.
사회에선 이들을 가리켜 38선을 넘나들며 장사를 한다고 해서 38 장사꾼이라 부른다.
정부 당국은 상인을 가장한 공산당원의 침투를 방지하고자 미아리 고개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통행금지 시간이 넘으면 단속을 강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