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16일 오후다.
밖에서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상호의 손녀딸인 소은이가 “할아버지 편지가 왔습니다” 하고 봉투로 된 편지 한 장을 건네준다.
지난 1월 17일 국방부 민원실에 제출한 민원에 대한 육군 참모총장의 회신이다.
민원 사항은 2003년12월 4일자 XX일보를 펼친 상호가 A10면 사회란에 53년 만에 회복한 군번 111X란 기사를 읽고 몇 가지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는데, 그에 대한 육군 참모총장의 답신이 꼭 한 달 만에 온 것이다.
편지 내용을 요약하면 1945년 8월 7일 향로봉 전투에서 모 사단 대대장으로 있던 X 대위가 공격 명령을 어기고 전장을 이탈한 죄로 10일 후인 17일에 “적전 비행 죄”로 즉결처분되었는데, 사실은 후퇴 명령에 의해서 적법하게 후퇴를 한 것을, 지휘관이 적전 비행 죄로 즉결처분하여 “적전 이탈”이라는 불명예와 함께 국립묘지에 매장도 못하고, 유족의 재심 요구를 성남 지방법원 형사 전원 합의 1부에서 “유족의 재심 청구를 기각 한다”라고 판결하여 고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육군 참모총장이 답변한 원문은 다 음과 같다.
육 군 본 부
우 321-929 충남 계룡시 남선면 부남리 사서함 501-18호 (042)550-1525 (전송)
법제처 과장 계승균 담당자 김영주
문서번호 법제 18501-040043
시행일자 2004. 2. 13 (2004. 12. 31) (군내공개)
받 음 박경화 귀하
참 조
제 목 민원회신문
1. 귀하께서 2004. 1. 17 국방부에 제출하여 육군본부 법무감실 법제과에 이첩된 “전시 군 형사 업무 관련 질의”의 민원사항에 대하여 붙임과 같이 회신합니다.
붙 임 : 민원회신문 1부. 끝.
육 군 참 모 총 장 인
민원 회신문
안녕하십니까.
귀하가 보내신 민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민원요지]
문 1. 고등군법회의와 즉결처분은 어떻게 다른지.
답. 계엄고등군법회의는 6.25전쟁 중에 일어나는 범죄에 대하여 군사재판을 담당하는 기관이었습니다. 즉결처분은 적과의 교전 직전 또는 교전 직후 등의 위급한 상황에서, 전장을 무단이탈 하거나 항명하는 자에 대하여 통상적 사법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지휘관의 독자적 판단으로 현장에서 처형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엄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와 즉결처분은 생명을 빼앗는 점에선 동일하나, 전자의 경우는 정식절차(수사 →공소 →재판→집행)를 거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아 즉결처분자의 변명의 기회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문 2. 6.25사변과 같은 긴박 시에 군 형사업무는 어떻게 하였는지.
답. 1950년 7월 26일 헌법 제 57조 규정에 의한 긴급명령(대통령 긴급명령 제5호)으로 발효된 계엄 하 군사재판에 관한 특별조항이 있었습니다.
일반 고등군법회의 심판관의 정족수는 최저 5인 이상의 장교로 구성되도록 규정하였으나, 위 조치령은 3인 이상의 심판관으로 재판부를 구성하도록 하였으며, 전시에 소요되는 부족한 법무관의 충원을 위해 일반 검사, 판사, 변호사로 하여금 군법무관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 근거를 마련하였으며, 피고인에게 유리한 제도인 예심조차도 생략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군사재판이 신속하고 엄정하게 처리되도록 하였습니다.
문 3. 6.25사변 당시 분대장 이상에겐 즉결처분권이 있었는데, 이것이 법리 상 합법인지, 불법인지.
답. 1950년 7월 26일 0시를 기하여 작전명령 제12호에 기하여 분대장 급 이상 지휘자 및 지휘관에게 즉결처분권이 부여되었고, 육본훈령 제191호에 의하여 1951년 7월 10일 0시부로 취소되었습니다.
아무리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전시라고 하더라도 군인에게 합법과 법률이 정한적법한 절차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분대장 급 이상의 상관에게 부하의 생명을 임의로 처분하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법치국가의 원리에 반하는 것입니다.
즉결처분권한을 부여한 훈령은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불법한 명령으로 무효라고 평가됩니다. 즉결처분을 하는 경우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게 됩니다. 실제로 전 내각수반 송요찬 씨가 사단장으로 있으면서 부하를 즉결처분하였다는 이유로 1963년 8월에 살인 혐의로 구속된 예가 있습니다.
“제네바 협정 제3조(1949년의 4개 협정 및 1977년의 추가 의정서 공동)에서는 즉결처분을 금지하고 있고, 이를 위반 시 중대한 전쟁법 위반 행위로서 전범으로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동 협정 제50조). 위 협정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한국 등 132개 이상의 국가가 가입하고 있습니다.
문 4. 6.25사변 중에 “나는 대한민국 군인이다. 적을 만나도 비겁한 행동은 취하지 않으며, 도망가는 군인을 만나면 전우라 하드라도 그자를 총살 하겠다”라는 군인수칙을 장병 공히 외우도록 강요받았는데, 이것이 합법인 지, 불법인지.
답. 위 3항과 같이 불법임니다.
문 5. 1950년 8월 21일 사형이 집행된 대대장의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열렸다고 했는데, 어떤 죄로 사형이 집행될 군인을 군단 고등 군법회의는 “적전 비행 죄”로 사형을 집행했는지.
답. 재판과 관련된 구체적 자료를 찾을 수 없고, 민원인의 질문취지가 정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 6. 1950년 6.25사변 당시 지휘관의 명령을 받고 적진을 공격하다가 조국에 젊음을 바친 영령들에게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형사합의 1부의 고 X 대위의 재심 재판결과를 어떻게 설명 하려는지.
답.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합의 1부(재판장 이충상 부장 판사)는 3일 한국전쟁 때 적전 비행 및 군기 문란죄로 즉결처형된 허지홍(당시 28세. 육사 5기)씨에 대한 재심 청구사건 선고 공판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사형 판결을 내린 육군 고등군법회의 재판은 실제로 열리지도 않았고 판결문과 심사 관련 서류도 피고인을 즉결한 뒤 조작했다”며 “이 사건은 당시 판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재심 판결 대상이 아니지만, 형식상 판결문이 존재하고 유족들의 명예회복이나 보상, 유해의 국립묘지 안장 등에 장애를 받고 있어, 이런 판결을 내린다”고 하였습니다.
육군에 보관중인 허씨 인사기록에 재판기록이 없고 “사망”으로 돼 있는 점, 사형 집행기록이 조작된 사실, “후퇴 명령이 내려졌다”는 작전참모의 증언 등이 사실이라면 고 허지홍 대위의 사망은 불법한 즉결처분에 의한 것이므로 무고하고 안타까운 죽음이라고 보입니다.
위 판결은 그러한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상과 같이 의문을 가지신 부분에 대하여 답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