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가 되자 현역 군인은 아니지만 군인과 같은 복장을 한 민족 청년단 단원이 응소자들을 모이게 하더니, 호명을 하면서 중대 편성을 한다.
편성이 끝나자 청년단 단원이 말하기를, “정상적인 계획에 따른다면 여러분은 신체검사를 거쳐 합격자만을 기차에 태워 대구 제5보충대로 입영을 해야 하나, 중공군의 진격이 빨라 여러분은 목적지까지 도보로 걸어가서 입영 절차를 밟게 됩니다.
여러분은 남하하는 동안에도 소집 영장을 받은 군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저희들 청년단원의 지시에 순응하고, 저희들이 목적지까지 인솔할 것입니다”라고 하더니 대오를 정리하여 앞뒤에 서서 부대를 인솔한다.
13일 학교에 들린 이 선생은 다음날 종로 2가 탑골 공원에서 신체검사를 마치면 바로 기차를 타고 대구 제5보충대로 떠난다고 들었는데, 그 동안 사태가 악화됐는지 상호네 응소자는 기차가 아니라 도보로 목적지까지 가서 입영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도보로 남쪽으로 행군을 하면서도 응소자 모두가 어떠한 형태로든 민족 청년단과 대동 청년단, 대한 청년단과 학생연맹에서 제식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인솔자의 지시에 순응하며 질서는 정연하다.
부대가 용산을 떠난 지 2일 만에 양평에 도착했는데, 모두 피난을 가고 도시 전체가 비어 있다.
거리를 지나며 주먹밥 한 덩이로 저녁을 때운 부대원은 각자 알아서 빈 집으로 들어가 하루 저녁을 지내라고 한다.
어제까지는 부대 행군으로 질서 있는 행동을 하고, 비록 초등학교의 교실이지만 청년단원이 불침번을 서고, 야간에 화장실에 가는 대원의 출입을 통제했는데, 양평의 빈 도시에 오니, 각자 자유행동을 허락한다.
처음 듣는 ‘불침번’이라는 군사 술어는, 대원이 잠자는 동안에 상황의 변화를 대원에게 알릴 임무를 띠고, 한 시간 동안 침실의 입구에서 자지 않고 잠자는 사람을 지킨다고 해서 불침번이라는 것이다.
피난 떠난 빈 집에서 하루 저녁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청년다원이 상호네 중대를 집합시키더니, “ 여러분의 아침 식사는 양평 초등학교 앞에 준비하였고, 다음 목적지는 여주 초등학교인 데, 용산을 떠날 때 12월 18일 떠났으니, 18부대로 명(命名)해서 각자 알아서 남하하고, 우리는 목적지에서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개인행동을 허락한다.
부대가 여주를 향해서 걸어가는데, 해가 저무는 오후에 대신면(大新面) 벌판을 지날 때다.
고구마가 들어있는 가마니를 길가에 내다놓고, “이것은 우리가 농사지은 고구마인 데, 인민군이 먹는 것보다는 여러분이 먹는 것이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도 곧 여러분의 뒤를 따를 것이니, 부담 없이 먹어주십시오”라고 하며 생고구마를 먹으라고 권한다.
밤 11시가 넘었다. 여주강을 건너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물이 깊어 건너지를 못하겠다.
여울을 찾아 먼저 건넌 사람의 뒤를 따르는 대, 초겨울이라 강물은 차고, 강물이 국부 위로 올라오니 면도날로 국부를 도려내는 아픔이 온다.
강 건너에선 모닥불을 피워놓고 “여이샤...,여이샤” 하며 강물에 들어선 사람을 향하여 용기를 준다.
목적지로 선정된 장소의 도로 가 책상 위에는, 바구니나 소쿠리 같은 용기에 밥을 빚어서 만든 주먹밥을 담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하나씩 준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점심은 11시부터 13시까지, 저녁은 16시부터 18시까지 지나가는 피난민에게 하나씩 주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주먹밥은 없으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나 이상은 주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양곡 창고에서 나온 쌀로 빚은 주먹밥이고, 피난민 모두에게 먹이자니 수자에 제한이 있다.
잠시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거나, 군에 입영하는 줄 알고 돈을 넉넉히 가져오지 않는 사람은, 길가에서 파는 음식물을 사먹지 못해 굶주린 배를 잡고 걸어야 한다.
피난 대열에서 굶어죽은 사람이 많이 생긴 것도 이 까닭이며, 국민방위군의 젊은이가 많이 죽은 것은, 군인에게 적용하는 군율을 이들에게 적용한 탓이다.
개인행동이 허락되고, 급식 장소에서 다음 목적지를 확인한 국민방위군은 신작로를 이탈해서 가까운 샛길을 이용해서 목적지로 향한다.
상호도 신작로를 이탈해서 다음 목적지인 청도로 가기 위해 가까운 오솔길로 접어들며 청도읍 뒷산을 넘는 데, 먼저 가던 대원이 고개 넘어 양지바른 곳에서 누워 잠들어 있다.
작업모에 무궁화 잎 두 개를 교차시킨 방위군 장교가 가까이 오더니, 걸음을 멈추고 엄숙한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