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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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노병의 독백

60년 전 그 날

0 8,908 2005.12.2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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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1945. 8. 15)은 더웠다.
정오에 일본 천황의 중대 방송이 있어서 공장이 쉰다고 하여, 상호네 양성공도 공장 대신 교실에 모여 앉아 천황의 방송을 듣기로 한다.
사감선생 (本宮武一)이 교탁 위에 라디오를 설치하고(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라디오의 전원을 배터리 아닌 전기로 사용했음), 양성공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며 천황의 방송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12시가 되자 사감선생이 라디오 스위치를 켜는데, “찌익 찍” 하고 잡음이 심한 가운데, 평소에 쓰지 않던 한문 술어라  “내...(朕の...)”하는 소리 외에 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거들먹거리며 라디오 방송을 듣던 사감선생은, “찌익 찍” 하는 잡음 속에서도 방송 내용을 알아들었는지, 앞에 있는 책상을 치며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통곡을 한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양성공이 웅성거리더니, 주물공장(鑄物工場) 목형부(木型部)의 가나무라(金村鳳烈)군이 벌떡 일어서서, 일본말이 아닌 한국말 로, “조선이 독립 된다아...”라고 외치더니, 자리를 박차고 미닫이로 된 교실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는 데, 100여 명의 양성공이 한국말로 “만세에... 만세 에. ..” 하고 두 손을 높이 들고 껑충껑충 뛰면서 밖으로 나간다.
상호는 한 달 치 월급 5원 20전과, 여비로 받은 5원 20전을 합한 10원 40 전을 받아들고 고향인 충남 예산으로 돌아온다.
일본이 미국, 영국 등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니, 한민족(韓民族)은 36년 간의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다.

국민은 식민지 민족의 공포에서 해방 되고, 남자 젊은이는 군대로 끌려가는 공포가 사라지며, 나이 든 젊은이는 일본 본토의 비행장 건설이나 군수공장, 철강공장과 탄광에 징용으로 끌려갈 염려가 없어진다.
처녀도 여자정신대(女子挺身隊)란 이름으로 종군 위안부로 전쟁터에 끌려가는 공포가 사라지고, 저녁이면 주권을 되찾은 기쁨에 마을마다 울리는 풍물 소리가 밤새 이어어진다.
우리 국기가 따로 있다는데, 예고없이 찾아온 해방이라 국기가 있을 리 없고, 집집마다 일장기 둥그런 원형 안에 태극을 그려넣고, 둘레에는 8괘를 그린 태극기를 만들어 대문에 게양하고, 부자라고 소문난 송필헌(宋必憲)과 방면용(方冕容)은 집에서 술을 담아 동내 사람을 불러 대접하며,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은 기쁨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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