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으나, 돈 많은 사람이 경험삼아 하는 고생은 낭만이 있고 즐거움이 있지만, 돈 없는 사람이 세 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고생은 죽 지 못해 까무러치는 고생”이다.
요세 신무이나 TV 뉴스 보도에 자살자가 늘고 있다는 보도에, 상 호는 거꾸로 살아도 이 승(乘)이 좋 다는 속담이 있는데 오죽하면 죽겠 느냐고 그 심정에 동정이 간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패배하고, 한국에 나왔던 일본 사람이 본 국으로 들어가니, 한국은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물자는 귀 하고 살기는 힘들다.
공장 생활 2년에 장돌뱅이 생활 2년으로, 중학교 진학은 같은 또래보다 4년이 늦었지만, 경쟁 상대였던 순자가 서울에서 학교에 다닌다는 소식에 자극 (1947.4,3일)되어 서울로 왔지만, 당장 등록금 마련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진학할 학생 수에 비해서 학교가 적으니 주야간의 차이는 없으며 해 방 당시엔 돈을 벌어 학교에 갈 수 있는 야간 학교도 제한되어 있다.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은 서울 학생이 진학할 자리를 침범했다고 해서, 서울과 지방 학생의 등록금은 차이가 있다.
해방 직후엔 남산 밑에 유리 공장이 있었는데, 주위에 사는 주민들은 유리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을 받아서, 수하(手下)에 소매상 5,6명을 두 는 중간 도매상으로 생업을 잊는 데, 상호도 6촌 매부의 가업을 본받아 자연스럽게 유리제품 소매상으로 종사한다. 소비자 요구에 따라 유리 공장에선 과자 진열장, 파리통, 남포 (Lamp)의 호야와 기름통 등 다양 한 제품이 나오는 데, 그때마다 제품을 자전거에 싣고 서울 시내를 돌며 소매를 하고, 일요일이면 수원과 춘천, 개성 등지로 장사를 나간다.
개성은 38선 바로 밑에 있는 도시라, 국경 아닌 국경에서 장사꾼의 거래가 서울보다 활발하나, 더 이상 북쪽으로 못가니 팔려고 가져온 물건은 원가(原價)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팔아야 하는 위험도 있다.
인천은 거리가 가까워서 당일치기가 가능한 데, 하루 종일 거리를 헤 매다가 귀로에 기차를 타면, 열차가 붐벼 출입구에 앉아 졸고 있으면, 창밖으로 떨어진다고 옆에 서 있던 승객들은 상호가 잠들지 못하게 깨우며 말을 걸어준다.
하루는 서울 시내를 돌며 남포의 호야를 팔고 있는 데, 지나가던 행인이 “개성 시내에는 호야가 귀하니, 한 번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명함을 주는 데, “개성시 선죽동 150번지, 대륙상회 대표 김길호 (金吉 鎬)”라고 쓰여 있다.
일요일 아침이다. 자전거에 호야를 싣고 개성으로 가서 선죽동 대륙 상회를 찾아가 주인을 만나니, 주인이 말하기를 “어제까지 물건이 없어 호야 값이 비쌌는데, 오늘 아침 물건이 들어와서 가격이 내렸다”며 원 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을 제시한다.
개성 사람은 상술이 능해서 고려 시대부터 해외 무역이 활발하고, 복 식부기도 개성 사람에 의해서 창안되었다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개성은 북쪽의 종착지요, 더 이상 북으로 뻗어 갈 길이 없으니, 어제 하던 말과 오늘 하는 말이 다르다.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가져왔다며 사정해서, 개성까지의 왕복 여비를 보탠 값에 물건을 팔고, 오후에 개성을 떠나며 자전거 페달을 밟 고 봉동(鳳東)을 지나면 해가 저문다.
초를 사서 신문지에 말아 자전거 축에 매어달고, 불을 밝히며 고양군 일산까지 오며는 밤 12시가 넘는다. 미아리 고개에서 통행금지를 위반 한 38장사꾼을 단속하는 순경을 생각해서, 상호는 자전거를 길가 마사 토(麻砂土) 신작로에 세우고 누웠다가, 통행금지 시간이 풀리는 4시가 지나면 서울로 들어온다.
여름이면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보신탕의 원료를 춘천에 있는 식당에 공급하기 위해서, 춘천으로 가는 길목의 망우리 고개는 자전거 장사꾼 이 쉬어가는 장소다. 춘천에서 물건을 팔고 망우리 고개에서 쉬고 있을 때, 개를 자전거 뒤 바구니에 실은 개장사가 상호 옆으로 와서 앉는다.
개장사가 상호에게 하루의 수입을 묻고는, “유리장사보다는 개장사 가 수임이 많으니, 직업을 바꾸라”고 하는 데, 상호로선 유리장사에 익 숙한 직업을 바꾸라는 데 망설여진다.
야간학교는 평일엔 오후 6시부터 시작하고, 토요일은 오후 1시부터 시작한다.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과목은 평일로 편성하고, 토요일은 반드시 체조 과목이 들어있다.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된 지 2년이 지났어도, 교육 행정은 정착 되지 못하고 혼란스럽다.
일본의 ‘히라가나’와 일본말로 배우던 한문을 한글로 배우고, 3단계 동작을 하던 “뒤로 돌아” 구호가 1단계로 바뀌 니, 공부하는 내용이나 익혀야 할 교련 구호가 쉬어도 배우는 데는 낮 설고 힘이 든다.
상호는 진학이 동료 학생보다 4년이 늦으며 다른 학생 들은 초등학교에서 2년간을 우리말로 공부를 했지만, 상호는 일본말로 초등학교를 나왔으니, 교과서 내용은 쉬운데 이해는 어렵다.
체조시간에 정렬을 할 때는 항상 1번으로 기준이 된다. 을지로 5가에 있는 사범대학에서 2개월간 새로 바뀐 교련 구호를 배웠다는 학도호국 단의 대대장이, 체조 시간이면 사범대학에서 배운 새로운 교련 구호를 전파하느라 열심이다.
“기오쓰께”하던 차려 구호가 “차렷”으로 바뀌고, “마와레미키” 하며
3단계로 돌던 ‘뒤로돌아’가 1단계로 바뀐다. 반장이 “우로 나라니”하 고 구호를 외치다가 “바로” 하면, 일본말의 “방고 (番號)”인 줄 알고 상 호가, “하나” 하면 동료 학생들은 웃는 데, 체조 선생은 이해를 한다.
일본식 교련 용어는 힘이 들어가고, 절도를 요구하는 데, 미국식 교 련 용어는 힘을 뺀 유연한 동작과 둥근 절도를 요구한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데, 어제까지 언문(諺文)이라고 무시하던 글자 가 한글이라고 힘을 실어 바꿔 부르는 데, 지금은 쉬운 단어지만 당시엔 어려웠던 단어가 상호 머리를 어지럽힌다. 가장 쉬운 단어인 오빠란 단 어도 해방 된 초등학교에서 체계(體系)적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한 상호 에겐 옵빠인 지 오빠인 지 분간을 못하겠다.